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가 문득 달력을 보니 오늘(15일)이 마침 스승의 날이다. 갑자기 지난 시절 학생들을 가르쳤던 기억과 함께, 필자가 가르쳤던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학원을 2005년 여름에 떠났으니, 벌써 학생들을 가르쳐본지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가르쳤던 녀석들, 그리고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몇 명은 인상이나 기억은 또렸한데 미안하게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한국에서 꽤 유명한 초중등 영어회화 프랜차이즈 학원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어린 꼬마 학생들을 상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를 담당했는데, 그 전까지는 주로 중고생 과외만 하다가 처음으로 회화반을, 그것도 어린 학생들의 수업을 담당한 것이었다.
사실, 유초등부를 맡고서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의외로 어린 아이들의 심성이 너무나 망가져(?)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자기집 차는 어떤 고급차인데 너네 차는 뭐냐고 묻는 아이, 이미 거친 욕설에 눈을 뜬(?) 아이, 그리고 어쩜 그렇게 다들 이기적이고 영악하기만 한지... 부모들이 다들 똑똑하고 잘난 아이로만 키우느라, 아이들의 내면을 가꾸는 일에는 도무지 신경을 안 쓴것 같았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이들에게 기대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 중에 현지라는 2학년 여학생이 있었다. 학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집 딸내미인데 의사 부모를 둔 아이답지 않게 정말 둔한(?) 아이여서 수업을 하기가 참 어려웠다. 심지어 그 녀석은 회화 수업 시간에 졸기까지 했다! 그런데, 현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참 순수하고 밝은 면이 있어서 나중에는 필자가 가장 예뻐했다. 곤충과 동물을 참 좋아해서 나중에 수의사가 될거라고 하면서, 가끔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다영이라는 3학년 여학생은 꼬마인데도 얼굴도 예쁜게 옷도 제법 멋지게 입고, 그런데 이 녀석은 은근히 나를 남자로 좋아하는 듯 종종 추파(?)를 던져서 나를 놀래켰다. 꿈에서 나랑 껴앉았다는 당돌한 얘기를 수업 시간에 꺼내서 다른 학생들이 선생님 좋아하냐고 놀리는데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역시 3학년에 규철이라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이 녀석은 우리 학원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아버지는 노량진 학원 원장이라는데 이 놈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장난만 치려는 놈이었다. 수업을 너무 방해해서 종종 필자가 완력으로 이 놈을 제압하곤 했는데, 하루는 그만 완력을 너무 썼는지 이 녀석이 아프다고 엉엉 우는 것이다. 순간 불쌍하기도 했지만, 나도 나름 화가 나 있어서 무시하고 그냥 집에 보내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이 녀석이 무단으로 결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내가 폭력을 써서 학원을 그만 다니겠다고 하면 어쩌지, 지 부모한테 일렀으면 어쩌나’ 이런 두려움들이 파도와 같이 몰려왔다.
다행히 다음날 다시 왔는데,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못 나왔다는 것이다. 이전날 울린 것도 미안하고 해서 이 녀석을 데리고 수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주고 정말 진지하게 앞으로 잘 해보자고 했더니, 이 녀석도 그러겠다고 약속하고서 제법 의젓하게 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녀석이 나를 좋아한다는 다영이를 흠모했다는 사실, 다영이랑 실력 차가 너무 나서 같은 반에 편성하지는 않았지만, 간혹 다영이를 마주치면 그렇게도 좋아하더만. 그러나, 슬프게도 다영이는 규철이를 벌레보듯 했단다.
5학년에 상현이라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이 녀석은 학교에서도 좀 왕따를 당하는 것 같았다. 공부도 제법 하고, 머리도 좋은 녀석인데, 이 녀석의 어머니가 너무 극성인 분이었다. 상담 차 학원에 방문했는데, 정말 무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눈에 불을 켜고 열변을 토했다. 원장 선생님 조차 저 엄마 사이코 같다고 하셨는데, 정말 동감이었다. 그 녀석은 아마도 그 극성 엄마 때문에 인생이 피곤할까봐 염려가 된다.
어린 꼬마들을 다루는 재주가 전혀 없었던지라 가끔은 예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져 필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특히, 어린 여학생들은 왜 그리 잘 우는지, 한 번은 편을 나누어서 게임을 시키는 시간이었는데,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한 꼬마 여자아이가 연속해서 가위 바위 보에서 지더니 갑자기 모든 동작을 멈추는 것이다. ‘얘가 왜 이러나?’하고 쳐다보니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과 함께 ‘으앙!’ 하면서 교실이 떠나가라고 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밖에는 원장 선생님도 계시고 가끔 학부모들도 와 있는데, 이렇게 볼륨이 큰 울음소리는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아니 대체 선생인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지가 가위 바위 보 졌다고 울면 나더러 어쩌라는 말인가? 그 뒤로는 절대로 가위 바위 보를 해야하는 게임을 꼬마들에게 시키지 않았다.
당시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면서 내가 느낀 얘기들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아이들의 정서와 감성에도 신경을 써달라고, 공부만 죽어라 시켜서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당시만 해도 필자 자신이 나름 순수했던(?) 시절이라 이런 낮간지런 얘기들을 학부모들에게 거리낌없이 했던 것 같다. 학부모들은 자신들은 다 그렇게 참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너도 나도 다 경쟁만 하려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할로윈데이에는 교실 불을 끄고 촛불만 켜놓은 채 꼬마들이랑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무서운 얘기를 들려주던 기억이 떠오른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던 그 총총한 눈망울들, 지금은 제법 컸을텐데, 그 녀석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다들 건강하게, 밝게,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게 자라고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