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뉴몰든 아트 페스티벌 덕분에 이번 주에 공연장을 두 번이나 찾았다. 지난 해 2회 행사 때는 하이스트릿 야외 무대에서 직접 연주를 하면서 공연자로도 참석했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좋은 공연팀들이 섭외된 덕에 관람객으로 편안하게 즐기게 되었고, 오랜만에 관람한 두 편의 공연은 참 많은 생각과 느낌들을 건네주었다.
우선 윤복희의 공연, 윤복희의 공연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다섯 살 때부터 무대에 서서 수십 년 간 무대에 서 온 거장의 공연답게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대형 극장은 아니지만, 소극장보다는 훨씬 큰 무대에서 기타 반주자 한 명만을 대동하고 공연을 했는데, 어쩌면 다소 썰렁할 수도 있던 그 무대를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채운 것은 바로 윤복희의 연륜과 카리스마였다.
무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 사람만 보여줄 수 있는 여유로움과 집중력, 노래에 대한 진지함과 즐거움, 그러면서도 관객과의 친밀한 소통, 역시 거장은 정말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특히, 그녀의 대표곡인 ‘여러분’을 들으면서 아주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마포구 중동에 살 적에 어머니를 따라 동네의 조그만 교회에 윤항기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러 갔었다. 당시에 필자는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고, 윤항기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여러분’이라는 노래에 얽힌 사연과 노래를 직접 들으면서 어렸지만 참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윤복희의 공연과 함께 관람한 공연은 바로 ‘난타’. 사실, 이미 한국에 있을 때 관람했기에 그다지 큰 설레임으로 공연장을 찾지는 않았는데, 공연을 보면서, 특히 배우들의 커튼콜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과 느낌이 들었다. 수 년 전 한국에서 ‘난타’를 처음 봤을 당시의 내 모습, 내 꿈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
정확히는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어떤 공연을 보고나면 관객으로서 감동하고 행복한 느낌들보다는, 내가 직접 무대에 서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그리고, 실제로 무대에 서는 경험들을 하면서, 그것은 정말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열정과 즐거움으로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난타’의 배우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무대를 사랑했던 내 꿈들이 아주 조금씩 현실 속에 묻혀져 왔다는 서글픔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무대에 설 자리가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수많은 꿈들을 꾼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그 꿈들의 대부분은 그저 꿈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현실에서 ‘해야 하는 일’에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그렇게 꿈을 외치던 필자조차 어느새 아주 조금씩 어른이 되어감을 느낀다. 피터팬처럼 그렇게 동심을 떠나고 싶지 않건만, 꿈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건만, 그럼에도 시간은 우리를 어른의 세계로 이끈다.
무대에 선 배우들을 보면서, 그들의 눈빛을 보면서, 그들은 그 순간 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30대에 접어들고, 어느새 청바지보다 양복이 더 잘 어울리고, 어느새 아랫배가 나오고, 어느새 먹고 사는 문제에 몰두하는 내 모습, 지난날 나 역시 그들처럼 그렇게 꿈을 꾸었더랬는데,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또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공연을 관람하고 나왔는데 마침 극장 밖에서 ‘난타’의 기획자인 송승환 씨를 만났다. 기자라고 간단히 소개를 하고 초등학교 시절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람했던 공연이었던 삼촌(해바라기)의 공연 때 뵌 적이 있다고 인사를 드렸다. 당시 해바라기의 공연을 기획한 분이 바로 송승환 씨였고, 공연 중 직접 게스트로 출연도 하셨다.
대학 시절 송승환 씨가 쓴 ‘세계를 난타한 남자 문화 CEO 송승환’이라는 책을 참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었다. 처음 한국에서 ‘난타’ 공연을 관람한 것도 이 책을 읽고서였다. 언젠가 나 역시 그렇게 세계 무대를 향해 꿈을 펼쳐보리라 수 없이 다짐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한국을 떠나온 것은 한국에서 모든 것을 걸고 문화예술에 전념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평생 직장에만 묶여서 꿈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현실만 따라 사는 인생을 살게 될까봐 두려워서였기도 하다.
물론, 지금 필자는 나름대로 필자가 원했던 삶의 균형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장 생계 걱정 없이 지내면서도, 또 틈틈이 하고 싶은 일들도 하고, 무대에도 서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한동안 현실에 끌려다니며 꿈과 열정을 조금씩 잊어버리려던 차, 가슴아픈 일들에 고통스런 마음을 부둥켜 안았던 차, 오랜만에 좋은 공연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직은 그 어떤 것에도 실망해서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여전히 내가 서는 무대, 그 무대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그리고, 단지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를 넘어서 그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내 삶의 무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