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혼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by 유로저널 posted Jul 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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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그리고 그들의 사는 얘기를 듣는 재미로 다음의 아고라 이야기를 즐겨 읽는다. 아무래도 이 곳 영국에서 살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들과 생각이나 의견의 차이도 생기는 것 같고, 요즘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 고민인지, 무엇이 관심사인지, 어떤 일들을 겪고 사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아고라 이야기에 올라온 사람들의 사연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들과의 간격도 좁히고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오늘 한 편의 사연을 상당히 인상깊게 읽었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어느 결혼 적령기 남성이 올린 사연인데, 결혼까지 생각하는 여자친구가 당연한 듯이 남자가 집을 해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더구나 이 여자친구는 전세도 아니고 집을 사오라고 해서 이 남자분이 고민이 된다는 얘기를 담고 있었다.

원래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꼭 남녀 대립 구도로 남녀 사이의 전쟁처럼 번지는 경향이 있어서, 이번 사연 역시 불필요하고 유치한 논쟁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에 대한 문제는 결혼을 앞둔 대한민국 젊은 남녀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라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사람들의 의견을 보면 남자가 집을 마련하고 여자가 혼수를 하는 게 보편적인 것인데, 집을 전세도 아니고 아예 사오라고 하는 것은 여자가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여러 의견들로 나뉘어서 누가 어떤 것을 더 많이 해야 하느냐, 어떤 게 더 공평한 것이냐 등 논쟁이 일었다. 그러면서 집이건 혼수건 받아낼 만큼 받아내고 시작해야 한다는 둥, 연애 시절 커플링이나 데이트 비용부터 대부분 남자가 내는데 이게 맞냐는 논쟁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은게 재미있기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냥 재미있을 수 만은 없는, 씁쓸한 기분도 든다. 예전에 ‘영국 결혼식 풍경’편에도 쓴 것처럼 한국에서의 결혼은, 남녀관계는 늘 무슨 거래처럼 보여진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 평생 함께 고난을 이겨내고 꿈을 나눌 사람이라면, 집이고 혼수고,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누가 무엇을 얼마나 더 내놓느냐, 돈을 누가 더 많이 쓰느냐, 그런 것들로 다투고 갈등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남은 평생을 함께 꿈꾸고 싶은 사람과 그저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에서 한없이 터져 나오는 뜨거운 눈물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집이고 혼수고 그게 별로 중요하지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는데, 함께 하고 싶어도 그 어떤 이유로 함께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늘을 향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게만 해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집을 따지고, 평수를 따지고, 혼수를 따지는 사람들, 그런 것들로 싸우고 갈등하는 사람들, 그런 것들로 상대방에게 고민과 부담을 안기는 사람들, 심지어 그런 것 때문에 결혼을 취소하고 관계를 끊는 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한 방울도 흘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게다. 너무나 보고파서, 너무나 그리워서,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만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빌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게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남은 평생을 함께하고픈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내게 무엇을 얼마나 해줄 수 있는지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모두에게는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사람일 지라도, 나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신뢰가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들어가는 행복은 집이나 혼수에서 오는 게 결코 아닐텐데, 얼마나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지, 얼마나 빵빵해 보이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서 오는 게 결코 아닐텐데, ‘사노라면’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보면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가 새는 작은 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초라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 불편함과 초라함을 잊게 해주는, 아니 오히려 그것 마저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게 바로 나와 함께하는 고운 님, 내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비가 새는 작은 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무수히 발생할 것이다. 결혼은 나한테 집을 해오고 혼수를 해오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좋은 집을 마련하고 얼마나 대단한 혼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를 함께 헤쳐나갈, 함께 꿈을 꾸며 행복을 만들어 나갈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젊은 시절의 뜨거운 사랑이 영원히 뜨겁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를 향한 깊이있는 이해와 진실한 사랑이 굳건한 신뢰와 함께 무르익으면, 비록 사랑의 뜨거움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소 식어질 지언정, 함께 하는 세상살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든든한 힘과 행복이 되어줄 것이다.

결혼을 앞둔 이시대 젊은이들이 집, 혼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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