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복권 당첨

by 유로저널 posted Aug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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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태어나서 한국, 영국 다 합쳐서 열 번 가량 복권을 사봤던 것 같다. 근본적인 마음자세가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그래도 어쩌다 재미삼아 복권을 사는 것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볼 수 있는 짓(?)이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어쨌든, 열 번 가량 되는 복권을 샀던 것은 매번 그 전날 꾼 꿈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주 가끔 이것은 뭔가 복권을 사라는 꿈인 것 같다 싶을 때마다 복권을 샀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소심하게 한 장씩만, 많아야 두 장을 샀다. 그 꿈들은 인분이나 돼지가 등장하거나, 아니면 낚시를 하는데 묵직한 물고기를 건져올린 꿈 등이었다. 물론, 꿈이라는 것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간혹 꿈에서 흔치 않은 것들이 등장하거나 흔치 않은 일들이 발생하면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게 사람이다.

어쨌든 그렇게 복권을 사고 싶게 만드는 꿈을 몇 차례 꾸고선 복권을 샀건만 이제껏 단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었다. 어떤 꿈들은 꽝을 확인하고 가만히 떠올려보니, 돼지도 나오고 개도 나왔던 게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꿈에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등장하셨다. 그냥 등장하신 게 아니라 필자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그분이 지금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꿈에서도 인식되어서 꿈을 꾸면서 울기까지 했다. 직접 얘기까지 해보니 정말로 좋은 분이신데, 참 안타깝고 슬프다는 생각에 그만 꿈인데도 눈물을 흘린 것이다.

꿈에서 깨고 나서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대통령이 꿈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고, 그래도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던, 대통령으로서는 유례없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필자 역시 참 좋아하는 대통령께서 꿈에 등장하셨으니, 오랜만에 복권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연코 필자가 혐오하는 전직 대통령들이 나왔더라면 절대 복권을 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도 역시 소심하게 딱 두 장, 2파운드치를 샀다. 누구나 그렇듯 필자 역시 만약에 큰 금액에 당첨되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흐뭇한 상상을 하면서 당첨 확인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인터넷으로 당첨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사실, 좋아하는 대통령께서 꿈에 나와서 좋은 기분으로 복권을 샀을 뿐, 실제로 당첨을 기대하는 마음은 거의 없었다. 이제껏 그렇게 꿈 때문에 샀던 복권들이 모두 꽝이었던 것처럼.

당첨 번호에 필자가 고른 번호가 무려 네 개나 있었다. 예전에 최고 기록(?)은 고작 두 개였는데. 그러나, 아쉽게도 네 개 중 한 개는 보너스 번호라 필자는 세 개를 맞춘 셈이다. 당첨금은 10파운드! 2파운드를 투자해서 다섯 배나 얻었다는 큰 기쁨(?), 그런데 생각해보니 여지껏 복권을 샀던 금액을 다 합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여하간 생애 첫 복권 당첨인지라 기분은 정말 묘했다. 불과 번호 세 개일 지언정, 정말 당첨이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이 도무지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수백 번씩 당첨 번호를 확인한다는데, 이해가 간다. 한 편으로는 내가 어떻게 이 번호들을 맞췄을까, 스스로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보너스 번호를 포함하면 네 개나 맞춘 셈인데, 두 개를 더 맞춰서 1등에 당첨되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 너무나 감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 만약에 그렇게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도 낮다는 일확천금의 기회에 의존하며 살아간다면, 그 정신은 정말 피폐해질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끔 그렇게 복권을 사면서 잠시나마 일확천금의 달콤한 꿈을 꿀 뿐, 당첨확인과 함께 결국은 또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에 끌려간다.  

성인이 되고 사회에 뛰어 들면서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우리들은 대부분 하늘이 자신에게 허락한 재물의 그릇의 크기를 알게 된다. 복권 당첨과 같은 정말 엄청난 인생역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남은 인생을 그 그릇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간혹 별다른 노력 없이도 처음부터 타고나는 재물의 그릇이 큰 사람들을 보면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늘이 자신에게 허락한 재물의 그릇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어찌 보면 잔혹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물의 그릇의 크기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복권 1등에 당첨되었다 해도 그것만으로 남은 평생 100%의 행복이, 만족이 보장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어느 동화에서처럼 필자에게 딱 한 가지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필자의 소원은 결코 복권 1등 당첨이 아니다. 그 어떤 것에도 변하지 않을 그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들,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원이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복권 1등 당첨보다도 수 만 배, 수 억 배는 더 기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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