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구타 유발자들

by 유로저널 posted Aug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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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회사 직원과 단 둘이 미팅을 했는데, 너무나 화가 치밀어서 순간 순간 욱하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머리가 띵했다. 이상하게도 흥분을 하면 영어도 잘 안나온다. 한 대 후려갈기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리겠다 싶을 때 다행히 미팅이 끝나고, 불쾌함을 팍팍 드러내며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들고있던 볼펜을 거의 분질러 버릴 듯 꺾다가 사무실 자리로 돌아와서 들고있던 서류를 내동댕이를 치고 F로 시작하는 욕을 내뱉었다. 옆에 앉은 영국인 동료가 처음 보는 필자의 모습에 흠칫 놀란다. 하루종일 일도 손에 안잡히고 기분이 영 엉망이다.

이런 기분은 군대 이후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너무나 짜증나게 하는 고참이 하도 괴롭혀서 이 놈을 그냥 묻어버리고 인생 쫑낼까 했는데, 순간 스쳐가는 부모님의 얼굴, 수많은 나의 책임들과 위치(?)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오늘 역시 정말 이 인간을 밟아버리고 영국 생활 쫑낼까 했는데, 역시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독사같은 인간 때문에 그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26년차 친구 성훈이와 나누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바로 인생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구타 유발자들, 사실 구타 유발자들은 참 완화시켜 표현한 것이고, 실은 인생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X같은 X들이라고 얘기했다. 성훈이랑 통화하면서 했던 얘기는 꼭 언제, 어디든 우리를 짜증나게 하고 열받게 하는 인간이 꼭 한 명 씩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싫다고 안 볼 수도 없는 그 어쩔 수 없는(?) 관계로 만나게 되는 그들은 우리들의 스트레스의 원천이 된다. 정말 신나게 두들겨패면 딱 좋을 것 같은 그들을 우리는 결코 건드릴 수 없는, 건드렸다가는 내 인생의 많은 부분에 손상을 입게 되는 그런 얄궂은 관계로 만나는 인간들이다.

그냥 학생이거나 자유인(?)일 때는 싫은 인간은 안 보면 그만이다. 더 어린 시절에는 이런 인간은 그냥 때려주면 된다. 그러다가 싫은데도 어쩔 수 없는 관계를 군대에서 처음 경험하게 된다. 고참은 아무리 싫어도 ‘갑’, 나는 ‘을’이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직장이라는 것을 다니게 되고, 밥벌이를 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싫은 인간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내가 ‘을’이기 때문에 아무리 싫어도 ‘갑’에게 싫다는 내색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좋다는 내색(?)을 해야 할 일도 생긴다. 진정한 스트레스를 체험하는 시기이다.

재미있는 것은 항상 이렇게 ‘갑’의 위치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싫은 인간이 어디를 가도 꼭 한 명씩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말 재벌 자식이나 정치인 자식, 아니면 로또 당첨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이들을 절대 피해갈 수 없다. 어디를 가도 꼭 한 명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마구 일으키는 구타 유발자가 되어 우리들로 하여금 욕 한 마디와 소주 한 잔을 더 들이키도록 만든다.

사실, 필자로서는 그래도 운 좋게도 구타 유발자들을 거의 만나지 않은 편이다. 직장에서도 수시로 상관 험담을 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동료들과는 달리, 어지간해서는 감정 표현도 안하고 별 얘기를 꺼내놓지 않고 지낸다. 직장에서 한국인이 필자 혼자 뿐이라 하는 얘긴데, 외국애들 정말 뒷담화 많이 하고 불평, 불만이 그냥 입에서 술술 쏟아진다. 오히려 한국인은 ‘뭘 그까짓거 가지고’ 싶은 이슈들을 얘네들은 반드시 입으로 나불거린다. 여하간 그러다 보니 누구하고 불편한 관계도 없고, 적도 없고, 그냥 잘 지내오고 있다. 동료들도 필자가 별로 나불거리지를 않아서인지 뒷담화 퍼레이드(?)가 벌어지면 필자를 껴주지 않는다.

구타 유발자 없이 잘 지내던 차, 아니나 다를까 약 1년 반 쯤 새롭게 합류한 늙다리 일본인 여직원이 구타 유발자였던 것이다. 필자보다 늦게 회사에 합류했어도 신입이 아닌 경력직이었는데, 하필 그 인간이 출근하는 첫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물론 그 때는 그 인간이 구타 유발자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는 물론 모든 직원들이 벌레처럼 싫어하는 밉상으로 판명되었으며, 그럼에도 회사 대표의 신임을 얻어 넘버 투의 자리까지 올랐다. ‘갑’이 되어버린 것이다.

깡마른 체구에 깡마른 얼굴, 흥분하면 눈의 흰자가 드러나는 이 인간은 정말 성경의 에덴동산에 나오는 뱀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간교함과 가식이 줄줄 흐르는 인물이다. 너무 가식 속에서 살다보니 스스로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듯 하다. 이 인간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으며, 남아있는 사람들도 여러번 뚜껑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필자하고는 그다지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없는 편인데도, 이번처럼 아주 간혹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여지없이 구타를 유발한다. 이 인간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도 모르게 그러는 것인지, 정말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하는 것에는 장인의 수준에 다다른 것 같다.

차마 대놓고 욕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동료들에게 뒷담화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이렇게 이 공간에서 얘기를 풀어놓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으며 웃음도 난다, 뭐하는 짓인지. 우리네 인생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구타 유발자들, “이번에 너로구나”하면서 인내력이나 수련하며 지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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