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과 함께한 밤

by 유로저널 posted Aug 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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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밤, 한국에서 영국을 잠시 방문한 두 명의 연극배우들과 이분들을 초청한 영국에 계신 연극배우 출신의 공연기획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공연기획자분은 이미 친분이 있던 분이었고, 이 분을 통해 두 명의 연극배우들을 만나 이분들을 인터뷰할 기회도 갖고, 이분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뭉쳐보자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사실, 이 날은 지난 주 ‘인생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구타 유발자들’을 썼던 날이었다. 그러니까 참 마음이 상했던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이 분들과 어울렸던 것이다. 하루종일 지쳐있던 마음이 이 분들과의 즐거운 시간으로 인해 말끔히 회복되었다. 역시 사람으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해소되는 것인가보다.

이 분들은 필자 또래의 연극배우들이다. 필자가 사춘기 시절 장두이, 남경주 같은 배우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무대에서 살아가는, 그러니까 한 때 필자가 그토록 꿈꾸던 연극배우의 인생을 실제로 살아가는 인물들이었다. 지난 날 동경했던 세계를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그들이 너무나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그 길로 들어서지 못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용기가, 혹은 열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사실, 이런 저런 문화예술 관계자들을 만나왔지만, 이번처럼 필자 또래의 현역 연극배우들을 사적으로 만나고 많은 얘기들을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밤이 깊어가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나눈 수 많은 얘기들, 역시나 필자의 예상대로 그들은 비록 배부른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걷는 그 길에 그 누구보다 확신과 열정이 넘쳤고, 꿈꾸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불안하지 않냐고, 주인공이 되고 스타가 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한데 괜찮냐고. 그런데, 그들은 주인공이 되고 스타가 되기 위해 배우를 하는 게 아니란다.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고, 그래서 계속 꿈을 꾼단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은 크지만, 그럼에도 무대에 선 순간, 그리고 관객으로부터 박수를 받는 순간 느껴지는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게 한단다.

그들에게서는 꿈을 지닌 사람들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가 났다. 그들이 훗날 모두가 알아보는 유명 배우가 되어 있을지, 스타가 되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들은 어느 곳에선가 무대에서 뜨거운 땀을 흘리며 또 뜨거운 박수를 받고 있을 것이다, 멈추지 않을 그들의 꿈을 향해 전진하면서.  

오랜만에 무언가 통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솔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 것 같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비즈니스를 위해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들의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필자 역시 그들에게는 가면을 쓴 얼굴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 배우들과 어울리면서 필자도, 그들도 가면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은, 무대에서 늘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가는 그들은 무대에 선 순간 가면을 쓸 것이다. 그러나, 무대 아래서 그들은 가면을 쓸 줄 모른다. 가면을 쓰지 않은 얼굴을 정작 가면을 쓰는 게 직업인 그들로부터 발견하다니...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우리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 어두운 밤 하늘로 퍼져간 우리들의 노래들... 배우들과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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