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회사에서는 오전 근무만 하고 나와서 점심을 사먹고 런던 동쪽에 있는 미술가의 작업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다. 점심으로는 필자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런던의 음식점 중 한 곳인 엘레펀트 & 캐슬에 있는 중국집에서 국수를 먹기로 결정했다.
5파운드 내에서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식당이라 종종 애용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해당 지역에 사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엘레펀트 & 캐슬 지역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질이 안 좋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범죄 위험성이 제법 높은 곳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맹세코 필자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런던에서 잠시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생들의 90%가 흑인들이었는데 너무나 좋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엘레펀트 & 캐슬 지역에는 흑인이나 브라운 계통 인종들이 유난히 많고, 범죄자 중 상대적으로 이쪽 인종의 비율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엘레펀트 & 캐슬 지역의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미 2006년도에 대낮인데도 엘레펀트 & 캐슬 지하도에서 강도를 당할뻔 했던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마침 지하도에 아무도 없었고 필자 혼자 걷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무시무시해(?) 보이는 흑인이 딱 봐도 이상한 느낌으로 계속 주변을 살피면서 일부러 천천히 걷다가 아예 멈춰 서더니 필자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필자를 향해 다시 움직였다. 워낙 느낌이 팍 오는 경우여서 이 놈이 필자를 향해 다시 움직이는 순간 냅다 뛰어서 지하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어제,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현금을 찾으려고 현금인출기에서 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막 누르는데 갑자기 브라운 계통 한 놈이 어떤 종이를 필자에게 들이밀면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현금인출기를 노리는 놈들에 대한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왔던 터라 이게 바로 그것이구나 싶었다.
이 놈이 아무리 수작을 부리며 종이를 들이미는데도 계속 “No”라고 소리치며 얼른 인출을 취소하고 카드를 다시 뽑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서니 뒤에 한 놈이 더 있었다. 두 놈이 패를 지어서 한 놈이 현금을 인출하는 사람의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중 다른 한 놈이 인출되는 현금을 가져가는 경우, 혹은 내가 누르는 비밀번호를 봐두었다가 카드를 가로채는 경우 중 하나였다.
두 놈에게 다가서서 나름 인상을 쓰고 “Don’t do that!”했더니 필자에게 수작을 건 놈이 “I’m sorry.”했다. 마음 같아서는 몇 대 때려주고 싶었건만 필자가 가진 무기(?)도 없었고, 이 놈들이 칼이라도 가지고 있는 날에는 필자만 당할 것 같아서 그냥 노려보고 말았다.
사실, 몇 번 망나니 10대들과 마주친 뒤로, 그리고 누군가가 위험한 상황을 당하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도 해주었지만 경찰이 40분이나 지나서야 나타나는 것을 보고, 영국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호신용 3단봉을 사가지고 와서 늘 가지고 다녔더랬다. 평소에는 짧게 접혀 있지만 3단을 펴면 쇠파이프가 되는 무기였다. 값도 2천 5백원으로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번에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만찬에 초대되어서 국회의사당을 방문했는데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엑스레이 검색대가 있었고, 늘 가방에 넣고 다니던 것이어서 그만 3단봉이 가방에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통과하다가 적발되어서 경찰까지 나타나고, 결국 압수를 당했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동양인이 국회의사당에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났으니 그들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필자를 마치 테러리스트처럼 바라보던 그들의 황당함, 하지만 그보다는 필자의 X팔림이 몇 배는 더 컸으리라.
여하튼 대낮인데도 이런 시도를 하다니, 불경기로 인해 이런 절도, 강도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특히, 이들은 동양인들을 잘 노리는 것 같다. 필자의 경우 영국에서 어느 정도 거주해서 현지 상황에 익숙하고, 이런 범죄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막 영국에 온 어학연수생이나 현지에 익숙치 않고 영어도 미숙한 경우, 이들의 표적이 된다.
갑자기 누가 영어로 말을 걸어오면 본인도 모르게 그 쪽을 쳐다보거나 당황할 수 있다. 주위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수법에 피해를 입은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반드시 기억하자, 현금인출기에서 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 누를 때는 반드시 손으로 가려서 누구도 비밀번호를 못 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카드와 현금을 안전하게 손에 쥐기 전까지는 옆에서 어떤 누가 말을 걸거나 난리 부르스를 떨어도 절대로 시선을 놓쳐서는 안 된다.
누가 길을 묻는다거나 필자의 경우처럼 어떤 종이를 들이밀고 뭘 물어도 무조건 “No”를 크게 외치며 무시하고 얼른 카드와 현금을 챙겨야 한다. 상식적으로 현금인출기에서 일을 보는 사람을 굳이 붙잡고 길을 묻거나 말을 거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100% 범죄를 시도하는 것이다. 보통 밤 늦은 시간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런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데, 대낮에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 같다.
독자 여러분, 이번 이야기를 기억하시고 현금인출기에서는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낮시간이던, 번화가이던,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히, 물리적인 공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여성이나 노약자분들이라면 가급적 은행 안으로 들어가셔서 은행 안에 설치되어 있는 현금인출기를 이용하시는 게 보다 안전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