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전에 필자가 연재했던 ‘시네마 천국’ 칼럼을 통해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필자는 정말 영화를 사랑한다. 대입 시절 진지하게 연극영화과를 고민한 적도 있었을 정도다.
누구나 어린 시절 영화라는 매체와, 극장이라는 공간과 처음 접했던 시절의 추억들이 있겠지만, 특히 외로움을 많이 탔던 필자에게 영화, 그리고 극장은 단순한 재미의 차원을 뛰어넘는 그것이었다.
지금은 필자 역시 주로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을 통해 영화를 감상하고 있지만, 그 시절 어두 컴컴한 극장의 커다란 화면 속에 펼쳐지던 그 신비로운 세계가 가져다 주었던 설레임과 감동은 너무나 생생하다.
필자가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어머니와 함께 봤던 ‘ET’였다. 극장은 아마 중앙극장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그림으로 직접 그린 극장 간판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 간판도 너무나 신기했고, 그렇게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광경도 그야말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존 윌리암스의 웅장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소년 엘리엇이 ET를 자전거에 태우고 밤하늘을 날아오르는 그 아름다운 장면은 아마도 필자를 비롯 수 많은 이들의 가슴에 동심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형제 없이 늘 외로움을 타던 필자를 위해 부모님은, 특히 영화를 참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 필자를 데리고 극장을 많이 다니셨다.
그 시절 방학이면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만화나 TV 프로그램 방영 시간대에는 어김없이 신작 영화 예고편을 보여줬다. 그러면 그 영화들이 어찌나 보고 싶던지, 부모님을 졸랐고 부모님은 일종의 방학 선물로 극장에 데려가 주시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인상 깊었던 영화들로는 어머니와 종로 2가 허리우드 극장에서 봤던 ‘스타워즈’ 3편, 그 웅장한 음악 속에서 화려한 우주 전쟁의 모습과 광선검 대결을 벌이는 주인공들, 그것은 정말 꿈의 세계였다.
큰이모가 사촌형들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보여줬던 ‘구니스’, 당시 대한극장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스크린과 가장 좋은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바, 영화도 너무 재미있었지만 그 대한극장의 위용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방학 때마다 우리 초등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라면 단연코 ‘호소자’와 ‘신서유기’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호소자’는 우리 또래로 보이는 꼬마들이 눈부신 쿵후를 선보이며 악당들을 무찌르는 영화로, 정말 쿵후를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하게 만들었다. ‘호소자’는 지난 시간에 언급한 부대찌개집 리빠똥이 있는 남영동의 금성극장에서 상영했다.
1편은 어머니와 봤는데 2편은 아버지와 봤다. 다소 유치하거나 황당한, 비현실적인 영화들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아마 ‘호소자’를 보면서 주무셨던 것 같다. ‘호소자’를 보고 나서는 리빠똥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지금은 그 리빠똥도, 금성극장도 사라져 버렸다.
손오공 이야기를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특수효과와 쿵후 액션으로 포장한 ‘신서유기’ 시리즈 역시 당시 엄청난 인기였다. ‘신서유기’ 시리즈는 역시 지금은 사라진 종로 4가의 세운상가와 붙어있는 아세아 극장에서 상영했다. 손오공 영화들은 어린이날이나 석가탄신일에 TV에서도 여러 번 방영해줬던 것 같다.
참, 한 번은 어린이날 너무 심심해하는 필자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필자를 데리고 홍금보가 나오는 강시영화 ‘귀타귀’를 보러 가주셨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영화들을 좋아하시지 않는 아버지는 ‘귀타귀’가 참 고역이셨을 터, 그럼에도 자식을 위해 그 황당한 영화를 꾹 참고(?) 견뎌내셨던 아버지의 사랑에 새삼 가슴이 찡해진다. 영화를 본 뒤 아버지는 당시만 해도 정말 특별한 먹거리였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지금 KFC)을 사주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어머니와 정말 기똥차게 재미있게 본 영화로는 단연코 ‘다이하드’. 필자 연령대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어머니의 친구로부터 이 영화가 재밌다는 소문을 들은 어머니가 필자를 데리고 나섰다.
원래 상영관은 종로 3가 단성사였는데 여기서는 이미 상영이 끝나서 당시에는 흔했던 재개봉관인 신촌의 이화예술극장을 찾았다. 이 극장은 화면도 매우 작고 시설도 속칭 구린 극장이었는데, 그럼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정식 좌석에는 앉지도 못하고 통로에 목욕탕 의자 같은 것을 놓고 쭈그리고 앉아서, 그럼에도 너무나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시절까지도 어머니와 극장을 자주 다니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주로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고, 대학생이 되고서 여자들과 극장에 다니며 어머니와 극장에 가는 일은 점점 드물어져 갔다.
작년 겨울 휴가 차 한국을 찾았을 때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와 극장에서 ‘2012’를 봤다. 너무나 재미있게 영화를 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필자도 너무나 행복했다.
그 어린 시절 필자의 손을 잡고 극장을 데리고 가셨던 부모님을 이제는 필자가 모시고 다녀야 하는데, 이렇게 부모님과 이역만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필자의 인생이 한 편 야속하기도 하다.
필자는 본 영화를 수십 번씩 또 보는 것을 좋아해서 요즘도 그 시절 부모님과 극장에서 봤던 영화들을 다시 보곤 한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잠시 눈을 감으면 어느새 코흘리개 꼬마로 되돌아간 필자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 어두 컴컴하고 팝콘 냄새가 진동하는 그 시절의 극장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