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서른 즈음에’를 통해 몇 차례 언급했지만, 형제 하나 없이 자란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절대 못하는 극도로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백원만 빌리면 밥을 사먹을 수 있고, 백원만 빌리면 버스를 탈 수 있음에도, 그 백원을 빌리기 위한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해서 차라리 굶고 차라리 걷던 필자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은 훗날 음악을 하면서 완치(?)되었지만,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성격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그냥 그 혜택을 안 입었으면 안 입었지, 그냥 내 몸으로 때우면 때웠지, 지금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는 절대 못한다.
이런 필자가 헤드헌터가 되어 생전 처음으로 영업이라는 것을, 그것도 한국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더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이라는 품목(?)을 취급해야 하니, 참 답답할 노릇이었다.
필자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서 영업을 극복하게 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어쨌든 당시 히루 아저씨와 한 팀이 되어 이곳 저곳을 시도한 결과, 그래도 몇 건의 채용 의뢰를 따낼 수 있었고,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어진 3개월 동안 어떻게든 한 건의 채용을 성사시켜야만 했다.
영업을 통해 고객사로부터 채용 의뢰를 받은 다음 과제는 고객사가 요청한 조건에 최대한 부합하는 인력을 찾아내는 것이다. 누구든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인력 같으면 고객사에서 굳이 비용까지 지급하면서 헤드헌터를 이용하지 않을 터, 당연히 대부분의 경우 고객사가 요청하는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인력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 고객사가 채용을 원하는 인력이 갖춰야 하는 10개의 조건을 제시했다면, 이 10개의 조건을 100% 정확하게 충족하는 인력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진짜 그 10개의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적어도 8, 9개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인력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정 마땅한 인력이 없을 경우에는 5개 이상이라도 충족시키는 인력들을 대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 때는 후보자가 갖고 있는 지난 배경이 비록 고객사가 요구하는 조건과 100% 맞지는 않지만 상당한 연관성이 있으며, 추후 고객사가 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잠재 능력이 있다는 방향으로 고객사를 설득해야 한다.
당시 비록 몇 건의 채용 의뢰를 받았었지만, 이 중에서 실제로 고객사가 우리가 추천할 인력을 채용할 것 같은, 업계에서 흔히 부르는 ‘Active position’은 한 두 개에 불과했다. 우리에게 채용을 의뢰한 대부분의 고객사들은 이미 자체 채용공고를 통해 확보한 인력을 채용할 것으로 보였고, 또 아직은 필자나 우리 회사가 검증이 안 된 상태라 고객사에서 우리가 추천하는 인력을 선뜻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히루 아저씨와 한 팀이 되어 고객사가 의뢰한 채용에 적합한 인력들을 확보하고 추천했지만, 아무리 우리 입장에서 정말 좋은 후보라고 추천을 해도, 결국 선택은 고객사가 하는 것이었다.
열 명 후보들의 이력서와 우리가 후보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작성한 추천 내용을 보내도, 고객사에서는 그 중에서 한 명 정도를 인터뷰하겠다고 하거나 때로는 전혀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영업 및 마케팅, 홍보를 통해 고객사로부터 채용 의뢰를 따내는 것도 엄청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고 나서 고객사가 원하는 인력을 찾아내서 채용시키는 일은 더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 회사는 ‘Contingency basis’ 혹은 ‘Success only basis’로 불리우는, 즉 우리가 추천한 후보가 최종적으로 채용되지 않을 시에는 고객사에 아무런 비용도 부과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헤드헌팅 업체들은 ‘Retainer basis’라고 불리우는, 즉 추천한 후보가 최종적으로 채용되지 않아도 그에 상관없이 고객사에 일종의 착수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최종 채용을 성사시켜야만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가끔은 후보를 찾아내고 채용시키기 위해 죽도록 일을 하고서도, 고객사에서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거나, 아니면 고객사가 마음을 바꿔서 채용 계획 자체를 변경 혹은 취소하는 경우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허탈한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첫 계약 기간 3개월이 총알같이 지나가고 있던 2007년 10월의 어느 날, 마침내 고객사 한 곳에서 우리가 추천한 후보를 인터뷰하더니 최종적으로 그 후보를 채용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물론, 고객사가 채용 제안을 해도 후보자가 입사하기 싫다고 거절하면 거기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터, 다행히도 후보자 역시 고객사의 채용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확답을 했고,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나는 우리 회사의 정직원이 될 수 있는 관문을 통과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