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넷 째 주에 ‘영국 ~년차’를 써왔는데, 올해는 ‘나는 런던의 한국인 헤드헌터’를 연재하느라, 또 지난 주는 유로저널 정식 휴간일이어서 글을 쓰지 않았고, 어쩌다 보니 이미 10월이 되어서 원래는 ‘영국 5년차’를 쓸 차례인데 결국 ‘영국 6년차’가 되어 버렸다.
2005년 9월에 학생비자를 받고서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과연 내가 이 영국 땅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또 얼마나 영국에 머물게 될 것인가를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었다. 연고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이 뛰어는 모험이었건만, 지난 5년 간의 흔적들은 그 모든 게 그저 기적일 따름이다.
더욱 감사하고 더욱 겸손해져야 하는데, 못난 인간의 본성을 따라 문득 문득 감사함을 잊고, 문득 문득 교만에 빠져드려는 나 자신을 더욱 채찍질해야겠다. 감사하다는 말을 더욱 자주 하고, 더욱 낮게 머리를 숙여야겠다.
되돌아 보면 영국 초창기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그야말로 모든 게 막막했던 그 시절, 다른 이들로부터 받았던 작은 정보가, 작은 도움의 손길이, 하다 못해 작은 위로와 격려의 말 한 마디가 참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어느덧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러는 사이에 나 역시 그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정보들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작은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통해 그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의 말 한 마디를 건낼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들을 갖고 있다.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미 영국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분들, 하다 못해 영국에 나보다 단 몇 개월이라도 먼저 와서 그래도 나보다는 영국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경험한 이들이 너무나 부럽고, 심지어 경외스럽기까지(?) 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이제 막 영국에 도착한 분들은 지난 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영국에서 6년차를 맞이하며 살아가는 나를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 사실 나 역시 아직도 내 앞가림 하느라 헤매고 있건만, 그럼에도 이렇게 영국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나로부터 어떤 정보든, 어떤 도움이든 얻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비록 누군가에게 그렇게 대단한 것을 드릴만큼 아직은 내가 별로 대단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드릴 수 있는 만큼 드리리라 다짐해본다.
지난 영국 5년차 한 해를 지내면서 가장 특별했던 일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첫 음반 제작이 아닐까 싶다. 영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토록 활발하게 음악을 해오면서 언젠가는 정식으로 음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4월 부활절 연휴 기간에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한국에서 후반작업을 마친 뒤 쟈켓 인쇄 및 비닐 포장까지 된 정식 CD로 제작을 해서 가져왔다. 공식 웹사이트도 만들고, 아이튠, 아마존과 같은 해외 음원 판매처에 등록도 하고, 그렇게 정신 없이 작업하고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반을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일만 남았는데, 과연 반응이 어떨지 너무나 궁금하다. 음반을 접한 단 한 명이라도 그 음악을 통해 아주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 ‘작은 소망’의 구절처럼 그 음악이 비록 세상을 구원하진 못해도, 그 음악으로 누군가의 사나운 눈길을 순하게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최근에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2006년 가을 야심차게(?)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2007년 1월부터 유로저널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거의 4년 가까이 방치해두었던 블로그였다. 지금 쓰고 있는 ‘서른 즈음에’ 말고도 영국 번역기사, 인터뷰, 취재, 또 유로저널의 자매지인 한인신문에도 많은 분량을 써야 했기에 그야말로 글에 치여 살다보니 도무지 블로그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신문에 쓰는 글의 분량이 많이 줄어서 여유가 조금 생겼고, 무엇보다 너무 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흘려보내는 것보다는 다른 분들의 생각과 느낌을 서로 공유하고 교감하고 싶어져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다. 우선 ‘서른 즈음에’의 지난 이야기를 비롯 그 동안 썼던 많은 글들을 업데이트하고, 신문에는 쓰지 않았던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도 나누고 싶다.
내 블로그의 이름은 ‘런던 나그네의 보석상자’. 나는 이 ‘나그네’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정착할 곳 없이 불안정한 모습으로 마냥 떠도는 그런 나그네의 개념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살아가는 매 순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느낌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떠난 나그네의 행복이 아닐까?
‘런던 나그네의 보석상자’, 그 보석상자에는 비록 금은방에 진열된 보석은 없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값진 진짜 보석들이 담겨 있다, 그리운 얼굴들과 값진 경험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들... 앞으로 또 어떤 보석들을 그 보석상자에 간직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