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약자석 vs 영국의 노약자석

by 유로저널 posted Oct 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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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소식을 접하다 보면 지하철 노약자석을 둘러싼 유쾌하지 못한 사연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사연들의 대부분은 노인들이 마치 노약자석이 무조건 자신들의 전유물인 듯 장악(?)하려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령, 젊은 임산부가 비어있는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노인들에게 엄청 욕을 얻어먹었다는 그런 사연들.

이런 사연들이 올라오면 대부분 노인들의 그런 태도를 비판하는 덧글들이 달리면서 세대 간 갈등의 양상까지 보이곤 한다.

필자 역시 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지하철이든, 버스든, 가급적 노약자석에는 앉지 않았던 것 같고,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던 지에 상관없이 주위에 노인이 보이면 반사적으로 자리를 양보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은 필자가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남달랐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고, 순전히 그냥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타인들로부터 좋지 못한 시선을 받을 것이라는 일종의 두려움이나 사회적(?)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마냥 X가지가 없다고 호통을 치시고, 젊은이들은 아무리 연장자라도 안하무인격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극렬히 대치하는 상황이 참 안타깝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는 한국, 연장자에 대한 공경은 분명 훌륭한 미덕임에 분명한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냥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서있기가 불편하니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정말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인’석이 아니라 ‘노약자’석인 만큼, 비록 노인은 아니지만 정상인이 비해 서있기 힘든 약자에 속한다면 나이가 젊은 사람이라도 당당히(?)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도록 어르신들도 의식을 전환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당연히 세상을 더 오래 산 만큼 젊은이들로부터 공경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단지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에게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은 고쳐주셨으면 좋겠다. 좋은 마음으로 노인을 공경하려 하다가도 너무 무례한 대우를 받으면 공경하려던 마음이 싹 가시는 게 당연하다. 비록 자신보다 어린 사람일 지라도 예의를 갖춰주시면 오히려 젊은이들은 그 보다 몇 배는 더 예의를 갖추고 어르신을 공경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오늘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어제 퇴근길에 문득 런던 지하철에서 노약자석 안내문을 봤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노약자석을 ‘Priority seat’, 즉 다음 사항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자리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for people who are disabled, pregnant or less able to stand’, 즉 장애가 있거나 임산부, 혹은 서있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Old’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도 ‘less able to stand’, 즉 서있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 포함되어 있을 테지만, 대놓고 노인들이 앉는 자리라는 인상은 주지 않으려는 듯 했다.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니 영국 사람들은 확실히 노약자석, 자리 양보에 대해 한국 사람들과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이 타셔서 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려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고, 심지어는 그렇게 자리를 양보하려 하자 오히려 기분 나빠하는 노인도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젊은 여성이 할아버지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자리를 양보한답시고 일어났는데, 그 할아버지는 기분이 상하신 듯 쳐다도 안 보고 인상을 쓰고 끝까지 서서 가시고, 그 여성은 너무 무안해 하고, 그 불편한 분위기에 주위에 있던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못한 채 결국 한참을 그 자리를 비워두고 모두가 서서가야 했던 우스운 일도 있었다.

영국 사람들 특유의 자존심과 깐깐함을 고려해보건데, 이들은 비록 연장자라도 “내가 서있을 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느냐?”면서 자신을 노약자 취급하는 것을 오히려 싫어하는 것 같다. 연장자라도 서있을 힘이 있으면 서서 갈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연장자들에게도, 젊은이들에게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노인이 서있어도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불편한(?) 경우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결국, 문화와 관습이라는 게 같은 상황도 이렇게 다르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편, 런던시는 임산부들이 대중교통 이용 시 보다 효과적으로 자리양보를 받을 수 있도록 임산부 배지를 배포하고 있다. 그 배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다. ‘Baby on board’, 즉 아기가 이 배지를 달고 있는 여성에게 타고 있다는, 이 여성이 임산부라는 얘기다. 이 배지를 달고 있으면 그 여성의 배가 불러 보이든, 안 불러 보이든 자리를 양보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한 번쯤 도입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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