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세월이 흘렀음이 진하게 느껴진 어느 날에...

by 유로저널 posted Nov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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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여유로운 주말, 날씨도 마침 내가 좋아하는 흐리고 비를 뿌려주는 그런 날, 문득 인터넷 하다가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요즘 막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지인들과 근황을 주고받기 위한 목적의 블로그는 아니고, 필자는 미니홈피 같은 게 없으니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꾸준히 소식을 주고받기가 어렵다.

그나마 영국에 막 왔을 당시만 해도 한국의 지인들과 꾸준히 이메일도 하고 전화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덧 영국에서 5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가다 보니, 또 나도, 그들도 다들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그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거의 소식을 주고받지 못한 채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영국에서 직장을 다니며, 또 글을 쓰고 음악을 하며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면 세월이 흐르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떠나온 곳, 내가 함께 했던 사람들, 그 시절의 내 삶이 어느새 스스로에게 잊혀질 때가 있다.

그러다가 이렇게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접하게 되면 문득 그 모든 것들이 파도처럼 내 가슴으로 밀려들어온다.

그들의 모습, 그들의 삶이 그렇게 변한 것을 보며 감탄하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면 그들보다 훨씬 더 변한 내 모습, 내 삶이 깨달아진다.

예전에는 나보다 수십 킬로는 더 나갔던 퉁퉁했던 후배녀석이 다음 달 결혼을 앞두고 어느새 날렵한 꽃미남이 되어 있는 모습에 감탄하다가, 문득 영국에 온 이래로 급격히 퉁퉁해진 내 모습을 깨닫는다.

고등학생 때 만났던 이들이 번듯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에 감탄하다가, 문득 역시 직장인이 된 내 모습을 깨닫는다.

이제는 중년 아저씨, 아줌마가 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싶다가, 문득 늙는 속도(?)로는 그들보다 더 빨리 늙어버린 것 같은 내 모습을 깨닫는다.

한국에서 열심히 결혼식을 따라다니며 축가를 불러줬던 그들이 어느새 자녀들을 하나 둘 안고서 모임을 갖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한국에 있었더라면 그들과 어울렸을 텐데 하면서 그 모임에 끼고 싶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린 걸까?

필자보다 인생을 훨씬 더 많이 살아온 인생 선배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세월이 많이 흘렀다.

특히, 이렇게 타국에서 정착해 살다보니 떠나온 내 고향과의 시간과 공간의 격차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처음 유학생으로 영국에 와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으로 여기까지 오면서 내 삶 역시 너무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내가 떠나온 곳 역시 그 세월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이제 고작 타향살이 5년을 보내놓고서 이렇다면, 과연 한국을 떠나서 수십 년을 살고 난 이후에는 그것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이렇게 한국을 떠나와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들, 저마다의 목적과 사연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타향살이를 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어쨌든 내가 목표하던 삶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근접하게는 이루었음에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더 나아갈 길이 무궁무진하게 놓여져 있기에, 그래서 나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기에 다가올 미래를 설레임으로 기대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처럼, 나 역시 긴 세월 동안 결코 버리지 않았던 그 꿈들을 어떻게든 붙잡고 살다보니 어느새 내가 꾸던 꿈들을 닮은 현실이 주어져 있는 것 같다.

타향살이를 하면서 참 얻은 게 많다. 이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을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오래 전 ‘서른 즈음에’에 같은 얘기를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꿈에서 내가 한국에 묶여(?)있는 상황이 되면, ‘내 삶은 영국에 있는데, 다시 영국으로 가야 하는데,’ 하면서 안타까워 하다가 잠에서 깨어 꿈인 것을 알고 안심하곤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얻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렇게 지나고 보니 잃은 것들도 분명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어떤 것이라고 정확히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잃은 게 있다.

아마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평범한(?) 삶을 이어갔다면 누렸을 것들...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것들이 아쉬워진 모양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결국 또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잃은 것들도 있지만, 분명히 나는 얻은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그 잃은 것들은 이렇게 그리워 하면서 글로, 음악으로 달래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내가 여기서 얻은 것들은 내 존재의 이유와 행복에 대한 것들이기에 이것들을 양보하고서는 못 살 것 같다.

문득 세월이 흘렀음이 진하게 느껴진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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