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름도 넘는 긴 휴가를 한국으로 다녀왔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지내는 보름은 그리도 더디게 가건만, 한국에서의 달콤한 휴가는 쏜살같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영국으로 떠나온 게 2005년, 그리고 벌써 2011년이다.
어느새 한국에서 전성민이라는 사람은 먼 나라 영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굳어져 있는 듯 했다. 멀리서 살다가 이렇게 어쩌다 한 번 나타나서 얼굴을 비추는 그런 사람으로...
부모님의 얼굴에는 한국을 떠나올 때만 해도 발견하지 못했던 세월의 흔적이 드리워져 있고, 한국을 떠나올 때만 해도 그래도 20대 청춘이었던 친구들이 30대 아저씨들이 되어 있었다.
한국의 모습도 갈 때마다 새로워지는 듯 하다.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이 서 있는 모습이 낯설고, 지난 날 그렇게 좋아했던 종로 거리를 걷고 싶어서 그 추운 한국의 겨울 밤에 광화문에서 종로5가 광장시장까지 걸었는데, 종로4가 세운상가 건물이 없어진 걸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영국 특유의 느림과 여유로움 속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한국을 가 보면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는 것을, 그 흐르는 세월 속에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럼에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실감하면서 수 많은 상념들이 교차하게 된다.
지금 살고 있는 영국을 참 좋아한다.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 영국에서 살아감으로 인해 내게 주어진 기회와 경험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적인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깊은 그 곳에는 언제나 한국을 향한 그리움이 자리했다. 내 소중한 조국이기에 본능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갖고 있지만, 솔직히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저마다 개인적인 경우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한국은 기회와 경험을 제공하기보다는 제한하는 게 더 많은 곳으로 느껴졌다.
한국 사회가 인정해주는 규격(?)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인간답게 살기가 너무나 어려워 보였고, 모두가 그 규격에 맞추기 위해 소중한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아둥바둥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숨막혀 보였다.
그래서, 비록 언제까지가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한국을 떠나와서 좀 더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는 그리운 것들, 또 나를 그리워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더 정확히는 그리운 사람들, 또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그리운 사람들과 그리운 것들을 멀리 떠나와 이렇게 그리움에 허덕이며 살아 가는가?”
아마도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해 본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타향살이 처지인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예전에 한국에서 방송을 통해서도 본 적이 있고, 실제 주위 지인들의 실질적인 증언(?)을 통해서도 듣게 된다. 타향살이를 하는 많은 분들이 실제로는 너무나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것,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 대부분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다는 것...
그런 사례들 대부분은 한인 이민자가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였는데,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서 그렇게 좋은(?) 미국에서 제법 성공해서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럽기만 하건만, 정작 그들은 언제라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는, 그러나 대부분 그렇게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얄궂은 사연들.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면 과연 내가 택한 이 길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나 역시 먼 훗날 내 나라로 돌아가서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든다.
그런데,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그 그리운 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고 싶지는 않은 나를 발견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그리웠던 사람들과 만나서 그토록 좋아하는 한국 음식들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한국의 신속하고 우수한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편리하건만, 그렇다고 그곳이 내 일상의 터전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잠시 머물면서 그것들을 누리는 한국은, 이렇게 이방인이 되어 찾아가는 한국은 너무나 행복한 곳이지만, 만약 그곳에 영원히 속해서 나 역시 그 아둥바둥과 그 타인의 시선들에 시달린다면 그 때는 또 어떻게든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할 것 같다, 처음 한국을 떠나올 때 그랬던 것처럼.
비록 그리운 사람들을 떠나 있고, 한국에 비해서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한국보다 낙후된 것들이 더 많은 이 곳 영국에 살고 있을지언정, 그래도 사는 곳은 영국인 게 아직은 더 좋다. 과연 언제까지 그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