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정상적인 집 문화는 당장 한국의 내 친구들, 내 선후배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그들 중 결혼을 한 이들은 99.99% 부모님의 재력이 어느 정도 되는 이들이고, 부모님이 ‘집’을 어떤 형태로든 해결해주신 경우다.
영국에 오기 전, 그러니까 20대 시절을 떠올려 보면, 당시 필자보다도 어린 후배들의 결혼식도 있었다.
아무리 초스피드로 대학과 군복무를 마치고 취업을 했다 해도 당시 나이로는 절대 큰 돈을 저축할 수 없는 나이였던 그들은 지금 떠올려 보면 역시나 그야말로 엄청 잘 사는 집 애들이었던 것 같다.
반면에 부모로부터 한 푼의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이들은 결혼 상대자를 만나면서도 집을 마련할 길이 없어 과연 결혼을 하게 될 지, 하게 되더라도 언제 하게 될 지 기약이 없다.
그나마 그렇게 결혼 상대자라도 만나 연애라도 하고 있는 경우는 나은 편이다.
서른이 넘어서 결혼 연령대가 되면 그렇게 부모로부터 한 푼의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조건’ 때문에 결혼 상대자를 만나기조차 힘든, 연애질 한 번 하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정도 연령대가 되면 더 이상 단순한 연애질이 아닌 결혼을 염두하는 진지한 교제가 된다. 당연히 서로 어느 정도의 조건이라는 것을 보게 되고,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가 과연 집을 해결해줄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남자의 부모가 그럴 수 있는 수준의 재력이 있는지를 보기 마련이다.
게다가 한국의 드라마에는 재벌이나 부유층이 하도 자주 등장하는 탓에,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보편적으로 누리는 것인 양 착각하는 이들이 정말 많아졌다.
이러다 보니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이들, 월급이 그렇게 많지 않은 평범한 이들은 보통 결혼 상대자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집을 도무지 마련할 길이 없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포기하기도 하고, 연애조차 하기 힘든 서글픈 현실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 시간에 부자 부모를 둔 이들을 질투하려는 게 아니다. 빈부격차나 사회 불평등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다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보장받고 누려야 하는 본질적인 행복의 기회가 ‘집’ 같은 것으로 인해 침해당하는 것은 너무 서글프지 않냐는 얘기다.
아직 미혼인 필자의 지인들과 얘기를 해보면 99.99% 집 걱정을 한다. 그런 사연들을 듣다보면 결혼이라는 것에 있어서 정말 사랑하는 결혼 상대자를 찾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경제적인 여건을 어느 정도 갖추었는지, 특히 집을 해결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찰떡궁합인 연인을 만나도 당시의 경제형편이나 집 문제가 해결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결혼을 할 수 없다.
반면, 서로 그럭저럭(?) 좋아하는 정도인데도 경제형편이나 집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시기에 교제를 하면 대부분 결혼을 한다.
오래 전 2007년도에 ‘서른 즈음에’에 ‘영국 결혼식 풍경’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같은 학교에 다니던 브라질 친구의 결혼식에 음악을 연주해주러 참석했었는데, 필자가 태어나서 접한 외형적으로 가장 초라한 결혼식이자 대신 가장 아름다웠던 결혼식이었다.
당시 그 친구는 정말 가난했다. 결혼식도 교회 건물을 빌려서 식을 올리고 식이 끝난 후 간단한 다과 정도를 제공했던. 특히, 이 날은 따로 반주자나 음악이 준비되질 않아서 신부 입장 시 필자가 즉석에서 기타 연주를 하면서 신부가 입장했던 기억이 난다.
이 친구는 결혼하고서 월셋방 한 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친구 부부는 그런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리셉션에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던 하객들이나 친구의 지인들 역시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하느냐, 두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혼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얘기에 열중할 뿐, 두 사람이 어디서 살게 되는지, 그들의 경제 형편이 어떤지 따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과연 한국에서라면 이게 가능할까?
모든 이들이 그 사람이 어느 지역의, 얼마나 크고 좋은 집에 사는지, 그 집이 그 사람 집인지, 아니면 전세인지, 월세인지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데?
결혼하면 서로 그렇게들 재산과 집을 비교하면서 자랑하고, 또 주눅들어 하는데?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이런 비정상적인 집 문화가 필자 세대는 물론 필자의 후배 세대들, 더 나아가서 자녀 세대들에게 더욱 큰 불행을 초래할 것 같다는 것이다.
당장 ‘88만원’세대로 일컬어지는 요즘 20대들만 봐도, 과연 그들 중 몇 %나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스스로 자신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추세로 계속 나아간다면 미래에는 결혼과 출산이 그야말로 부자들만의 문화(?)가 될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를 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그래도 일단 이 집 문제만이라도 좀 정상적으로(?) 바뀌어 준다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
다음 주 마지막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