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회

by 유로저널 posted Mar 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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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려분들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항상 새로운 ‘서른 즈음에’를 쓰기 전에 유로저널 웹사이트의 ‘서른 즈음에’ 게시판에서 지난 주 썼던 글을 살짝 확인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쓰기 전에도 역시 ‘서른 즈음에’ 게시판을 들어가 보았는데, 지난 주 썼던 글의 번호가 199번이더군요.

그렇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어느덧 ‘서른 즈음에’의 200번째 이야기입니다. 글쟁이들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200회 연재가 별 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처음 쓰기 시작했던 2007년 1월만 해도 저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연한 미래를 향해 열심히 도전장을 던지고 있던 유학생이었습니다.

영국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꿈을 펼치며 살고 싶다는 바램만을 간직한 채, 그러나 너무나도 높은 현실의 벽들을 마주한 채,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꿈과 열정뿐인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불안하면서도 설레이던 청춘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쓰기 시작한 ‘서른 즈음에’, 그 당시에는 이렇게 4년이 되도록, 200회가 되도록 ‘서른 즈음에’를 계속 쓰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가끔씩 오래 전 작성했던 ‘서른 즈음에’의 지난 이야기들을 읽어보곤 합니다. 거기에는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당시 제가 생각하고 느끼며 경험했던 제 삶의 흔적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서른 즈음에’는 제 일기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서른 즈음에’를 써 오던 중 저는 유학을 마치고 영국에서 취업을 하게 되었고, 그토록 꿈에 그리던 영국에서의 삶을 꾸려가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유일한 한국인 헤드헌터가 되어 커리어도 갖게 되었고, 기자가 되어 취재 현장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음악인으로 자작곡이 담긴 음반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지난 삶의 흔적들이 ‘서른 즈음에’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서른 즈음에’가 제게는 소중합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서른 즈음에’ 초창기 이야기들, 세상을 잘 모를 때 썼던 그 이야기들 속의 제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더 정확히는 지금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지금의 제 모습은 그 때에 비해서 분명 나름대로 발전한 모습입니다만, 그 때에 비해서는 순수함이 덜 한, 동심에서 더 멀어진 모습이기도 합니다.

‘서른 즈음에’을 처음 썼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얻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얻은 대신 잃어버린 것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먹고 사는 전쟁에 뛰어들면서 세상을 더욱 많이 알아버린 탓에, 대신 제가 간직했던 순수함을 그 만큼 잃어버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서른 즈음에’를 썼던 초창기에는 일상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참 많아서 글을 쓸 소재들이 넘쳤습니다. 그 만큼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끼면서 살았던 것이지요.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도 그렇게 생각과 감정을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솔직히 그 때에 비하면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그에 따른 물질적인 성과도 얻었는데, 정작 제 내면은 오히려 텅 빈 것 같습니다. 일하고, 먹고 사는 일 외에는 별로 생각도 안 하고, 별로 느낀 것도 없이 시간만 미치도록 빠르게 지나갑니다.

우리들 삶의 가치는 얼마나 돈을 벌고, 얼마나 직장에서 인정 받느냐 말고도, 그보다 더욱 고결하고 소중한 것인데...

정신없는 일상에 끌려가면서 그저 돈 벌고, 직장에서 혹은 사회에서 인정 받는 것에만 안주하면서 정작 영혼은 텅 비고 감정은 메말라 간다는 것, 심지어 그렇게 내 영혼이 텅 비고 감정이 메마른다는 것 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서른 즈음에’을 쓰려고 하는데 쓸 이야기가 없을 때, 그만큼 내가 지난 한 주 동안 돈 벌고, 직장에서 인정 받는 것 외에는 별로 생각한 것도, 느낀 것도 없구나 싶을 때, 참 무섭고 서글픕니다.

그나마 이렇게 글을 쓰면서 그것들을 환기시키고, 또 음악을 하면서 그것들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지 모릅니다.

그리고, ‘서른 즈음에’가 200회가 될 때까지 어디선가 읽어 주시고, 어디선가 공감해 주실 독자 여러분들께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몇 단어 되지 않는 휴대폰 문자로, 또 몇 문장 되지 않는 트위터로 소통하는 요즘 시대에 이렇게 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신다니...

앞으로 얼마나 더 ‘서른 즈음에’가 이어질 지는 알 수 없지만, ‘서른 즈음에’는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중한 것들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 제가 속한 가야금과 기타의 듀엣 KAYA가 영국 최초의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3월 17일(목) 영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에 방송되며, 인터넷 http://www.gffradio.org.uk 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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