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 우주 허공 안에 있는 만물만상(萬物萬象)은 탓할 줄 모른다.
수많은 별들은 허공을 떠돌던 작은 혹성이 날아와 충돌하여 상처가 나도 그 혹성을 탓하지 않는다. 수명을 다하여 블렠홀로 빨려 들어가서 녹아 없어져도 블렠홀을 탓하지 않는다. 지구는 태양 둘레를 금성과 화성 사이에서 수십억 년을 돌았고 앞으로도 수십억 년을 더 돌아야 하지만 지루해 하지도 신세를 한탄하지도 않는다.
산골짝을 흐르는 물은 산에서 바위가 굴러 내려와 갈 길을 막아도 바위를 탓하지 않는다.
큰비로 산사태가 나서 흙탕물이 되어도 큰비를 탓하지 않는다. 바다로 흘러 들어 짠물이 되
어도 바다를 탓하지 않는다. 수 만리를 흘러도, 고여서 물웅덩이가 되어도 아무것도 탓하는
것이 없다. 내려 쬐는 햇볕에 증발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빗방울 되어 떨어져 내려도, 흰 눈
이 되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도, 얼음이 되어 굳어있어도 무엇 하나 탓하지 않는다.
토끼는 호랑이에게 잡혀 먹혀도 호랑이를 탓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사자는 건기(乾期)에 잡아먹을 먹이감도 없고 강물이 메말라 마실 물이 없어 허기지고 목말라 죽어도 날씨를 탓하지 않는다. 표범이 굶주리다가 모처럼 잡은 사슴을 하이에나가 빼앗아 가도 하이에나를 탓하지 않는다. 어미 코끼리가 질병(疾病)으로 자식을 잃어도 질병을 탓하지 않는다. 산에 사는 산짐승은 산불이 나서 살던 집이 불에 타고 불에 타 죽어도 산불을 탓하지 않는다. 넓은 들판에서 소들이 떼지어 풀을 뜯어먹다가 소 한 마리가 벼락에 맞아 죽어도 소는 벼락을 탓하지도, 벼락맞은 소를 탓하지도 않는다.
불나방이는 촛불 주위를 맴돌다가 불에 타 죽어도 촛불을 탓하지 않는다. 개미가 비가 와서 집이 무너져내려도 비를 탓하지 않고 소 발에 밟혀 죽어도 소를 탓하지 않는다.
씨앗이 바람에 날려 메마른 자갈밭에 떨어져도 바람을 탓하지 않고 자갈밭을 원망하지 않는다. 천 년의 풍상(風霜)을 이겨낸 소나무가 한번 휘몰아친 폭풍에 뿌리 채 뽑혀 쓰러져도 폭풍을 탓하지 않는다. 부엉이가 나무 덩걸에 구멍을 파서 집을 짓고 알을 까서 아기부엉이를 길러도 부엉이를 탓하지 않는다. 들판에 자라는 풀은 양들이 풀밭을 짓밟고 다니고 풀잎을 다 뜯어먹어도 양을 탓하지 않는다.
만물만상(萬物萬象)이 난 대로 있는 대로, 꼴 대로 그냥 있고 그냥 사는 것은 사람이 가지는 ‘마음’이 없어서이다. 사람이 가지는 마음이 없어 순리로 산다. 사람도 가진 마음을 다 버리고 자기를 벗어나면 순리로 그냥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