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땅에 있는 만물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고루 빛을 비춥니다. 다만 뭉게구름이 햇빛을 가리기도 하고 산과 골짜기가 음지를 만들기도 하고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의 위치에 따라 아침에 양지이던 곳이 저녁에는 음지가 되기도 하고 아침에 그늘졌던 골짜기가 한낮에는 밝은 햇빛을 받아 빛나기도 합니다. 해의 위치는 늘 변하고 있어 나무가 만든 그늘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나무 둘레의 땅에 고루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이와 같이 빛이 비치는 곳과 비치지 않는 곳은 그냥 일어나는 자연현상일 뿐인데 사람들은 양지(陽地)와 음지(陰地)에 의미를 두고 양지는 긍정적으로, 음지는 부정적으로 매김질합니다. ‘사회의 양지와 음지’ ‘정치계의 양지와 음지’ ‘환율 변화의 빛과 그늘’ …
천둥이 우르렁거리고 번개가 번쩍이며 벼락이 치는 것은 강한 전기를 띤 구름이 땅으로 방전(放電)을 일으키는 자연현상인데 누가 벼락맞아 죽으면 ‘그 사람이 평소에 이러저러해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바다 밑바닥의 돌출(突出)된 지형(地形)과 암초(暗礁)에 주기적(週期的)으로 강한 해류(海流)가 부딪쳐 소용돌이 치는 물살에 지나가던 배가 뒤집히는 것을 용왕이 노해서 그렇다고 심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왕방연은 강원도 정선 땅 유배지(流配地)에 단종을 두고 돌아오는 길에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저 강물도 어린 단종을 산간 벽지에 두고 가는 찢어지는 듯 아픈 내 마음과 같아 울면서 밤길을 흘러가는구나) 하고 읊었습니다.
아름다운 새 소리를 듣고 내 마음이 슬프면 ‘저 새도 슬피 우는 구나’ 하고 내 마음이 기쁘면 ‘저 새도 기뻐서 노래하는구나’ 합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비가오면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아 슬퍼하는구나’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지난 겨울에 서설(瑞雪)이 내려서 그렇다’ ‘복동이네 집에 흰 송아지가 태어나서 그렇다’ 고들 합니다.
옳지 못한 일을 하고 나면 번개가 쳐도 두렵고 누가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이야기하면 자기를 두고 이야기한다고 지레 짐작(오해)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마음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냥 있는 세상을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인 좁은 마음으로 짓고 부수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