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 마을에서 마을 지도자를 뽑기로 하였는데 세 명의 불나방이 후보로 나섰다. 첫 번째 후보는 주택정책을 들고나왔다. ‘우리...

by 유로저널  /  on Nov 27, 2007 13:39
불나방 마을에서 마을 지도자를 뽑기로 하였는데 세 명의 불나방이 후보로 나섰다.

첫 번째 후보는 주택정책을 들고나왔다. ‘우리 불나방은 약하기 때문에 다른 곤충이나 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잡아 먹히기도 한다. 그리고 한낮에는 무더위로 고생하고 밤에는 추위에 시달리고 있으며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피할 곳이 없어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오들오들 떨 수밖에 없다. 내가 지도자가 되면 적에게 들키지 않고 숨기 좋은 곳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

두 번째 후보는 ‘조상대대로 굶주리며 살았는데 풍족하게 먹으면서 잘 살게 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세 번째 후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우리가 왜 불나방인가? 예로부터 조상대대로 불을 좋아해서 그렇게 불리지 않은가. 우리의 정체성은 불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지도자가 되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마을 곳곳에 만들어 누구나 쉽게 가까이 할 수 있게 하겠다. 그리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지킴으로써 자부심을 가지고 불나방답게 살수 있도록 하겠다.’

불나방들이 투표를 하고 개표를 한 결과 세 번째 후보가 당선되었다. 마을 곳곳에 불 터를 만들고 마을 한가운데 광장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을 만들었다. 이윽고 공사가 다 끝나고 점등이 되자 마을 전체가 마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모두들 환호하며 지도자를 잘 뽑았다고 좋아하였다. ‘이제 우리는 곤충세계에서 떳떳이 가슴 펴고 살게 되었다’고 뽐내며 흐뭇해 하였다. 며칠 밤을 새며 잔치판이 벌어지고 불이 있는 곳마다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였다. 밤새도록 놀다가 지쳐서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정신 없이 잠에 곯아떨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 있는 불나방들이 하나 둘 어디론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잘 몰랐으나 없어진 불나방이 점점 많아지면서 마을 이곳 저곳에서 불나방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온 동네에서 ‘남편이 없어졌다’ ‘우리 아이가 안 보인다’ ‘친구가 사라졌다’ 하는 소리가 매일 들려왔다. 그 원인을 알 수 없었으나 여러 사례들을 종합해 본 결과 불에 타 죽었다고 결론지었다. 불나방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서 달콤한 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불만 보면 날아가 주위를 돌다가 불에 다가가서 타 죽고 말았다. 살아남은 불나방들은 친구들이 불에 타 죽은 줄 알면서도 불을 보면 날아갔다. 마을 대표를 잘못 뽑았다고 후회하면서도 불 주위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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