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오감(五感)으로 인지(認知)한 것, 인식(認識)한 것(외부세계, 지식과 정보)을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에 담아놓고 있습니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코로 냄새 맡은 것, 혀로 맛 보고 입으로 말한 것, 온 몸의 피부로 접촉하여 느낀 것 일체를 마음에 담습니다. 온 세상 – 우주, 별 - 을 담아놓고 내가 살아온 온 삶 - 사연, 인연, 살아온 삶의 배경(장소), 추구해온 명예, 부(富), 장래계획 - 을 모두 담아놓고 현재도 계속 담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눈을 감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사연, 장소, 인연들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의 몸은 영상과 소리, 맛과 냄새, 촉감, 그리고 느낌과 감정까지 찍어서 담는 고성능 카메라이며 ‘나’는 전문 사진기사입니다. 이와 같이 외부세계를 경험하는 순간 사진 찍듯이 찍어서 마음에 담는 것은 인간으로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찍어서 마음에 담아 놓고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에 매이고 갇혀서 살고 있습니다. 또 담아놓은 것만 알지 담아놓지 않은 것은 모릅니다. 그러니 자기 속에 담아놓은 것이 옳다 하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자기 나름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옳다 그르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시비분별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가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근원적으로 닫혀있습니다. *한편 실물을 찍어서 앨범에 담아놓은 사진이 가짜이듯 마음에 담아놓은 것은 모두 허상(가짜)입니다. 사람은 허상을 담고 허상 속에서 허상의 존재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뼈를 바수고 심줄을 끊는 날카로운 이빨도, 배를 할퀴어 가르고 내장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발톱도 없습니다. 추위를 막아내고 가시나무로부터 살갗을 보호해 주는 털도 없고 날개도, 비늘도 없습니다. 적보다 더 빨리 내달아 도망갈 수도 없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 적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변화무쌍하여 예측할 수가 없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항상 불안하고 무력합니다. 언제 화산이 불을 뿜고 땅이 갈라져 삶을 송두리째 엎어버릴지 알 수가 없고 느닷없이 삶을 휩쓸어가는 폭풍과 홍수, 눈사태가 올까 보아 두려움에 떨고 있어야 했습니다.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굶주린 호랑이가 언제 달려 들지 모르고 독사가 언제 소리 없이 다가와 발가락을 물어뜯을지 불안 속에서 경계하여야 했습니다. 또 부족한 먹거리를 누가 빼앗지나 않을까 내 가족을 헤치지 않을까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살아왔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좋게, 더 잘’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남을 누르고 이겨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삽니다. 갈수록 서로 경계하고 의심하고 나보다 나은 남을 의식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속내를 내보이면 나의 것이 모두 남에게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아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삽니다. 이중(二重) 마음 가지고 삽니다. 사회가 복잡다기화 되면서 누구에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 좋다고 믿었다가 낭패 보는 일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마음을 꼭꼭 닫아걸고 의심하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