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짐을 지고 삽니다. 무슨 짐을 지고 살까요? 마음의 짐을 지고 삽니다.
학창시절부터 나를 괴롭혔던 동창생이 있습니다. 숙제 한 것 보여주지 않는다고 친구들 앞에서 옷을 벗기고 때리기도 하고 학용품과 돈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매를 맞아 팔이 부러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 때문에 학교 가기가 무서웠고 극도의 증오와 공포, 그리고 수치심, 자괴감 등으로 정신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은 적도 있고 자살의 충동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간신히 학교를 졸업하여 그 친구와는 만날 일이 없어졌지만 그 친구가 뇌리(腦裏)를 떠나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방황하다가 신앙을 알게 되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어 결혼도 하고 사업도 시작하여 그런대로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 친구를 닮은 사람이라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게 될까 두려워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앙인으로서 용서해야지 하고 수도 없이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였습니다. 그 후 사업이 번창하여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데다 세월도 많이 흘러 그 친구의 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삼십여 년이 지난 어느 일요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바로 그 친구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하였지만 마음을 갈아 앉히고 침착하게 대응하였습니다. 일주일 후 다음 일요일에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엉겁결에 그러자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부터 괴로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삼십여 년 전의 일들이 죄 되살아나고 학창시절 고양이 앞의 쥐처럼 그 친구의 말을 감히 거절하지 못했던 관계가 무의식 중에 작용하여 그만 약속해 버린 자신이 후회스러웠지만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수없이 기도하고 용서한 것도, 오랜 세월이 흐른 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설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옥같이 보내고 약속한 일요일이 되자 무슨 핑계를 대고 나가지 말까 하고 생각했지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시간에 대어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많이 변했구나, 옛날의 그 친구가 아니구나 싶어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좀은 어색한 분위기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 친구는 내 손을 부여잡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해 달라고 빌기 시작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 친구는 학교를 마치고 주색에 빠져 몇 년을 허송하고는 우연히 만난 어느 전도사의 주선으로 신학대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어 목회자 활동을 25년째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친구에 대해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미움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하도 오랜 세월을 짓눌려 살아와서인지 영화나 TV드라마에서 그 친구를 닮은 배우를 보거나 학교에서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겪은 일이 떠오르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칠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