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를 했다가 수십억 원대의 전 재산을 날리고는 ‘어떻게 해서 모은 것인데’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는 사기꾼의 말에 속아서 투자를 했다가 다 날리고 홧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미 재산은 사라지고 없는데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재산이 나를 못살게 한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들이 그립기도 하고 걱정이 되곤 한다. 이웃집 노인이 편찮은 걸 보면 불현듯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의 건강이 걱정된다. 아이들을 조기유학 보내놓고는 매일 걱정을 한다. 밥은 잘 챙겨먹는지, 건강한지, 할 일은 잘 하고 있는지, 나쁜 아이들의 꾐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동네 이웃 노인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내시는데 내 마음에 담아둔 부모님이 걱정하게 만든다. 유학간 아이들은 그곳에 잘 적응하여 좋은 친구 사귀고 공부 잘 하고 있는데 마음에 담아둔 아이들이 나를 괴롭힌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그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다 처분하고 멀리 이사까지 하였으나 첫눈이 내리면 그와 데이트하던 일이 생각나고 몇 십 년이 지났지만 다정하게 같이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또 그 때 일이 생각나서 눈물짓고 잠 못 이룬다. 난다. 지난 날 들이 마음 속에 들어 있다가 조건이 되면 되살아난다.
어린 시절 자상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은 부모님만큼 자상하지 못한 배우자를 만나면 불만 속에서 살고 스스로 불행에 빠지기도 한다. 현재가 고생되고 불만스러우면 과거에 행복한 시절을 떠 올리며 한숨짓는다. 과거에 온갖 고생을 겪은 사람은 어떠한 상황이라도 헤쳐나가고 행복을 잘 가꾸어나간다. 자상하신 부모님과 그 사연을 마음 먹어 놓아서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배우자가 불만이다. 과거의 행복했던 사연이 마음 속에 들어있어서 현재를 그것과 비교하고 있다.
‘내가 유명인이다’ 하고 마음에 먹어두면 그렇게 대접받으려 하고 그렇게 행세하려 하고 목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지 않을 때보다 자유롭지 못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
사람은 살면서 오감으로 인지한 것을 모두 마음에 담아놓는다. 온 세상(하늘, 별, 태양, 달…)과 나의 삶(장소, 인연, 사연)을 다 담아놓고 산다(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사진처럼 떠 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담아둔 것은 모두 허상이다. 실제 있는 세상과 삶을 카피한 것들이다. 이렇게 마음에 담아놓은 허상이 짐이 되어 그 짐을 지고 산다. 없는 짐을 잔뜩 짊어지고 삶을 살아간다. 매 순간순간의 삶을 마음에 담으면서 새로운 짐을 짊어지고 산다. 무엇이 짐인지도 모르고 왜 짐 지는 지도 모르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