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모든 것)은 근본인 본바닥에서 나와서 존재합니다. 무한한 우주 허공에 수많은 별들이 있고 별 중에 태양과 달과 지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에는 물과 공기가 있고 이웃한 태양에서 빛과 열을 공급받아서 온갖 생명체를 비롯해서 만물 만상이 있습니다. 모두가 근본인 본바닥과 같은 재질로, 본바닥과 하나로 ‘있습니다’. 물질인 형상은 나와서 있다가 수명이 다하면 다시 본바닥 자체로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렇게 ‘있는’ 세상을 오감으로 찍어서 마음에 담아놓고 있습니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코로 냄새 맡은 것, 혀로 맛본 것, 피부로 느낀 것 – 오감(五感)이 인식하는 순가 그것을 모두 마음에 담습니다. 사람 눈의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면 필름에 영상이 남듯이 눈으로 사물을 보는 순간(오감으로 인식하는 순간) 마음에 남습니다. 고향 산천과 내가 살던 집, 그 시절의 할아버지할머니, 젊은 부모님, 형제자매, 그리고 나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마음에 담겨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공간과 사물,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찍혀서 마음에 담겨있습니다. 태어나 살면서 경험한 일체 – 온 세상(하늘, 별, 달, 태양…)과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인연, 사연, 장소, 지식, 정보…) – 를 찍어서 마음에 담아놓았습니다. 마음에 담아놓은 것은 과거지사만이 아니고 장래의 꿈과 희망까지 다 담고 있습니다.
마음에 담아놓은 이것이 마음세계이고 사람은 이 마음세계에서 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있는 공간과 사물들을 찍어서 담고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가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과 찍어놓은 사진이 겹쳐져 있어 사진인 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없는’ 사진 세계(=마음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실제로 ‘있는’ 세상에 산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마음세계가 전부입니다. 그것이 가장 소중하고 그것이 다 옳고 모든 것을 그 세계에 맞추려 합니다. 또 마음에 담겨있는 것들은 항상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나를 끌고 다닙니다. 외국에 이민을 가도 내 마음에 고향이 그대로 있고 돌아가신 부모님도 그대로 있습니다. 고향을 주제로 한 TV드라마를 보면 내 마음에 담겨있는 어린 시절 고향 생각에 젖어 들기도 하고 첫눈이 내리면 삼십 년 전 첫눈 오는 날 사랑하는 이와 데이트 했던 아련한 추억에 가슴저리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에 담아놓은 것들은 조건만 되면 나를 끌고 다닙니다.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 나를 떠났는데도 내 마음에는 그대로 남아있어 아쉬움이 남고, 회사가 부도나서 재산이 나를 떠났는데도 내 마음에는 그대로 남아있어서 아까운 마음에 잠을 못 이룹니다. 이렇게 마음에 담겨있는 것들이 짐이 되어 짐 지고 삽니다. 사람은 누구나 ‘짐 지고 고생하는 자들’(고해-苦海-에 사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