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에펠탑을 찍은 사진은 진짜가 아닙니다. 파리 시의 15구에 하늘높이 서 있는 에펠탑 실물이 진짜이고 그것을 찍은 사진은 가짜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찍어놓은 일체는 가짜입니다. 진짜인 세상을 찍어 담은 가짜인 세상에 사는 가짜가 ‘나’입니다.
어떤 악한이 칼을 들고 죽이려고 내 뒤를 쫓아 옵니다. 두려움 속에서 나는 죽을 힘을 다하여 달아납니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한참을 달아나다가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악한이 달려 들어 칼로 내 목덜미를 찌르는 순간 눈을 번쩍 뜨면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목덜미를 만져보고 피가 나왔는지 살펴봅니다. 실제로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습니다. 분명히 꿈을 꾸는 동안에는 꿈 속의 일들이 실제였지만 꿈을 깨고 보니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던 악한도, 죽을 힘을 다하여 달아난 나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일도, 칼에 찔린 일도 없습니다. 또 꿈 속에서의 ‘나’는 살아있는 줄 알았지만 꿈을 깨고 보면 꿈 속의 ‘나’는 생명이 없는 허상일 뿐이었습니다. 살아있는 ‘나’ 는 꿈을 꾸면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꿈을 깨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과 삶을 사진 찍어 담고 그 사진 속에서 살아온 ‘나’도, ‘삶’도 이와 같습니다. 사진에서 벗어나 보면 사진 세계는 있지도 않았고 그 속에서 살았던 ‘나’도 ‘삶’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에 있을 때에는 살아있는 줄 착각하였지만 사진세계에 있는 일체는(‘나’는 물론) 허상으로 생명이 없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삶을 사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주인이고 몸은 도구입니다. 삶은 마음이 도구인 몸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인인 마음이 사진인 허상이었습니다.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생명이 없었습니다.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허상인 줄도 모르고 허상 속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살았습니다. 허상인 존재가 ‘살아서’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꿈 속에 있을 때는 꿈인 줄 모르지만 꿈을 깨고 보면 꿈이었음을 알 수 있듯이 사진 속에 있을 때는 사진 속 허상임을 모르지만 사진세계를 벗어나고 보면 있지도 않은 허상세계에서 허상의 존재가 산다고 착각했음을 압니다. 꿈 속의 사연과 나는 일체가 없는 것이듯이 사진세계의 삶과 삶을 살았던 ‘나’도 없는 것입니다. 산 바도 없고 살았다는 ‘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허상입니다. 이 허상을 다 없애면 만물만상의 근본이고 영원불변의 살아있는 본바닥만 남고 본바닥의 재질로 거듭나면 본바닥과 하나가 되어 ‘있는’ 참 세상에서 참의 존재로 삽니다. 허상을 다 없애어 ‘없는’ 사진세계를 벗어나면 ‘있는’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세상은 진짜이고 완전합니다. 세상은 영원불변하고 살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