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완전하게 있습니다. 만물만상의 본바닥(근본)에서 수많은 별이 나오고 지구라는 별에는 만물만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지를 못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필름에 담아놓듯이 온 세상과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찍어서 마음에 담아놓고 그 마음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마음세상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있는’ 세상(實像世界)에 살지를 못하고 ‘없는’ 마음세상(虛像世界)에 살고 있습니다. 없는 마음세상에 살고 있는 ‘나’도 없는 허상입니다. 꿈 속에 있을 때는 세상 속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살아 있다고 느끼지만 꿈을 깨고 나면 꿈 속의 세상과 나는 없는 허상임을 알게 되듯이 마음세상을 다 없애고 ‘나’마저 없애고(벗어나고) 보면 마음세상은 있지도 않았고 마음세상에서 살아온 적도, 살아온 ‘나’도 없음을 압니다. 꿈 속의 주인공인 ‘나’가 생명이 없듯이 마음세상의 ‘나’는 생명이 없습니다(허상이어서 생명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나’를 다 벗어나서 ‘있는’ 세상에 나와야(거듭나야 - 깨어나야) 비로소 살아있는 ‘완전한’ 세상(영원한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을 닦아 벗어나보면 그렇게 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마음을 닦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전에서도 일체의 가진 것은 물론 자기마저 다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를 가지고는 가르침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내 마음이고 저렇게 사는 것도 내 마음입니다. 가르침을 지키는 것도 내 마음이고 지키지 않는 것도 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있어 살인도 하고 간음도 하고 물건을 훔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그대로 두고는 ‘해라’ ‘하지 마라’ 하여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음심(淫心)을 가진 카사노바에게 간음하지 마라고 아무리 말하여도 음심을 없애지 않는 한 일시적으로 음심을 누를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조건이 되면 음심이 일어나 간음을 할 것입니다. 도심(盜心)을 가진 조세형은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하였지만 탐나는 물건을 보자 눌러놓은 도심이 일어나 그것을 훔치다 붙잡힌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은 일체의 마음이 없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냥 살지 못하는 것도 수만 가지 마음이 있어서이고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지 못하는 것도 마음이 있어서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마음을 다 버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의 마음이 없는 자입니다.
지금까지 경전과 수많은 수행 법에서 마음이 문제임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있는 마음을 없애어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는 마음을 일시적으로 갈아 앉히거나 억눌러서 마음을 다스리는 데 그쳤습니다. 마음을 닦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마음을 실제로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닦는 방법이 없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을 가진 채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마음을 닦을 수 있는 방법이 나와있는데도 마음을 닦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