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마음 닦는 방법으로 마음을 닦으면 실제로 마음이 닦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닦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닦인다는 것이 입증(立證)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닦인 만큼 변화가 옵니다. 마음이 한없이 편해지고 표정이 부드러워진다든지, 좋지 않던 건강이 좋아지거나 병이 낫는다든지, 보다 관대해 지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된다든지, 지혜로워져서 진리에 관한 많은 것이 깨쳐지고 어렵기만 하던 경전(經典)이 알아진다든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를 감지(感知)한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이 변했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느끼기도 전에 주위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닦은 만큼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을 닦아서 닦은 만큼 되기 때문에, 또 되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닦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닦은 만큼 되기 때문(변화되기 때문)에 (변화)된 만큼 삶이 변합니다.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 것은 다 마음에 달렸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마음이 닦이니(없어지니)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태어나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또,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책을 통해서 많은 교육을 받아왔고 신앙이나 수행을 통해서도 삶의 바른 지침으로서 금과옥조(金科玉條)를 보고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알고는 있지만 알고 있는 대로 살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알기만 하고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도 아니 되고 억지로 그렇게 살려고 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지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해도 한 바가 없어야 합니다(했다는 마음이 없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살게 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없어야 성현들이 주신 말씀대로 살아집니다. ‘해라, 하지 마라’ 가 필요 없습니다. 마음을 닦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성현들이 전해준 말씀은 진리의 삶입니다. 진리의 삶은 진리가 사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되지 않고는 그러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진리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음의 문제이듯이 진리가 되지 못하는 것도 바로 마음이 문제입니다. 만물만상은 진리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진리의 자식이면서 진리와 하나입니다. 사람은 진리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진리와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있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존재와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을 닦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을 닦는 방법이 없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마음 닦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도 마음을 닦지 않는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