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어느 스님이 돌아가시면서 “일생 동안 선남선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그 분은 근년에 드물게 보는 고승(高僧)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하직한 어느 성직자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려고 50년을 찾아 헤매었는데 하나님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다른 성직자에게 하소연 한 편지가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08.3월 )은 ‘켈커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1948년부터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면서 자신이 겪은 내적 고통을 지옥에 비교하고 한 때는 천국과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까지 드러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 분은 ‘마치 모든 게 죽은 것처럼, 내 안에 너무나 끔찍한 어둠이 있다(1953)’ ‘내 영혼에 왜 이렇게 많은 고통과 어둠이 있는지 얘기해 달라(1959)’고 다른 성직자에게 하소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분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경전의 말씀대로 사신 분입니다.
최근에 돌아가신 고위성직자는 오래 전에 ‘하나님을 보지 못해 얼굴이 새까맣게 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삶을 몇 십 년 동안 살아왔고 또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종교의 종류와 종파를 떠나서 두루두루 존경을 받아온 분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앞에 말씀 드린 분들은 정말 솔직하고 용기 있는 분들입니다.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면서 쌓아온 세상의 평판과 명예를 한 참에 허물어뜨릴 수도 있는 고백들입니다. 경전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초인적(超人的)인 삶을 치열하게 사신 분들이 그러하다면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실제 그렇게 살지도 못하고 자기편의적으로 경전을 받아들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체면을 구길까 보아, 이제까지의 평판을 잃을까 보아 두려워 솔직하지도 못하고 용기가 없어 척하고 사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기 내면의 실상과는 다르게 포장하고 살려고 하니 그것이 무거운 짐이 되어 고통스럽고, 한번 그렇게 숨기고 보면 계속 그렇게 살게 되다 보니 짐은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그 짐에 매인 노예가 되어 자유를 잃고 살게 됩니다.
그 분들이 보통 사람들과 달리 대단한 또 다른 이유는 말씀을 준 분을 제대로 모르면서도 그 모르는 분이 주신 말씀대로 살기 위해 그토록 진지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보고 들어 아는 것을 실천했다는, 온갖 내면의 갈등을 이겨내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절차탁마(切磋琢磨) 했다는 것이 대단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