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하지 않던 새로운 일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거나 지금까지 해오던 생활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어보지만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마음을 고쳐먹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지금까지 그러한 삶을 살게 한 것은 그러한 마음이 있어서인데 사람들은 그러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고 또는 무엇을 하지 않고 살아온 것은 그렇게 하게 하는 마음과 그렇게 하지 않게 하는 마음이 있어서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내 마음이고 저렇게 사는 것도 내 마음이다. 무엇을 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내 마음이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을 그대로 둔 채로 생활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어보아도 생활이 바뀔 수가 없다. 탐욕(마음)이 있는 한 탐욕을 억제하지 못할 조건이 되면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는가.
어느 유명한 외국 스님이 우리나라를 다녀 간 적이 있는데 그의 저서 ‘화를 다스리는 법’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은 ‘화가 조금 나면 열을 세고 많이 나면 오십을 세어라. 화가 아주 많이 나거든 백을 세어라’ 고 하였다. 모두 누르고 참으라는 말이다. 화를 그대로 두고 누르고 참는다고 화날 일이 있는데도 화가 나지 않겠는가? 몇 번은 속으로 삭이고 겉으로 화를 내지 않을 지 모르지만 화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언젠가 화낼 조건이 되면 화가 일어날 것이다. 또 속으로 삭인다는 것도 겉으로 드러나지 만 않았을 뿐 이미 속에서는 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참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수행법(修行法)들은 모두 있는 마음을 갈아 앉히거나 누르고 참거나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마음을 뿌리째 없애지 않으면 누르고 참으며 다스리고 있던 마음이 일어날 조건이 되면 다시 미워하고 증오하고 짜증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마음을 비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잠시 마음을 억눌러 참다가 세월이 흐르면 눌러놓은 마음이 되살아나 그 마음이 그 마음이어서 사는 삶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경우를 본다. 마음을 비우려면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또 비우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음을 비우는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마음을 비울 수 있겠는가?
마음을 닦을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마음을 닦는 방법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사는 일체는 마음인데 지금까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삶의 주체인 ‘나’라고 하는 존재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헤매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지만 제대로 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미몽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열린 마음으로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보이고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