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한다. 태어나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을 말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 학교에서 배운 것, 책에서 본 것, 경험해서 알게 된 것 등 모두 지식이나 정보로 아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밖에 말하지 못한다.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산 사람은 외국을 잘 모른다. 외국에 대해 책을 읽었거나 외국에 갔다 온 사람의 말을 들었다 해도 보고 들은 것 이상을 말하지 못한다. 영어를 배운 사람은 영어는 말할 수 있어도 다른 외국 말은 말할 수 없다.
사람이 아는 것은 먼지 한 알만큼도 안 된다. 무한한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을 얼마나 아는가? 또 무한한 우주에서 만상만물 간에 일어나는 현상은 얼마나 알 수 있나?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미미하다.
사람은 창 밖의 참 세상을 알지 못한다. 창문에 때가 끼어 있어서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밖에 모른다. 흐릿한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이다. 사람이 허상 속에서 허상을 보고 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은 참이 아닌 거짓(허상)일 뿐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론적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말을 할 뿐이다. 그 아는 것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한다.
창문에 때가 끼어 바깥에 ‘있는’ 세상(참 세상 – 실상 세상)을 보지 못하고 모르듯 사람은마음에 때가 끼어 참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참을 알려 주어도 마음에 때가 끼어서 알아듣지 못한다. 창문에 낀 때를 닦으면 창 밖의 세상이 드러나듯 마음에 낀 때를 다 닦으면 참이 드러난다. 창문을 닦는 데 그치지 않고 창문마저 깨어 없애면 때가 더 이상 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때 낀 마음을 다 닦고 때가 낀 마음을 담고 있던 나마저 없애버리면 때가 끼일 수 없는 존재 가 된다. 이 존재는 참이어서 그냥 참을 알고 참이어서 참말하고 산다.
지금까지 써온 칼럼은 책을 보거나 누구한테 들은 것을 가지고 이론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유리창을 다 닦고 부수어서 드러나는 것을 직접적으로 쓰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우회하여 쓰기도 하였습니다. 때를 닦아서 드러나는 것은 모두 참입니다. 닦아서 그렇게 되어서 하는 말, 쓰는 글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모두 참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때가 끼어 참을 모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아는 것에는 참이 없습니다. 그러니 참을 말할 수도 쓸 수도 없습니다. 닦아서 되어보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