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인천에 상륙 작전을 감행한다고요?”
“그건 너무 위험하고 또 무모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가 워낙 커서...”
“그뿐 아니라 우리 기밀을 적이 안다면, 아무 엄폐물이 없는 개펄에서 전멸당할 겁니다.”
“차라리 군산항으로 상륙작전을 펴는 것이 어떤지요?”
민족상잔의 비극인 6. 25 전쟁 중 그 유명한 인천 상륙작전을 두고 맥아더 장국은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현재 낙동강까지 후퇴한 남한 군이 유엔군의 도움으로 북진을 계속하는데, 어느 모로 보나 유엔군이 승리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전투를 통해서 북진을 한다면 매 km 북진 때마다 수백 명의 젊은 군인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그래서 평양까지 북진을 계속 한다면 적어도 수십만 명의 군인이 피를 흘리고 죽어야 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어떻게 젊은이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전쟁을 끝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날마다 했다고 한다. 물론, 현재 방법으로 북진을 계속한다면 평양까지도 쉽게 밀고 올라갈 수 있었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요구했기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인천 상륙작전을 계획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천 상륙작전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처음에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미 행정부도 반대했고, 야전군 장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장성들이 모인 가운데서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작전 계획을 브리핑했지만, 하나같이 너무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특히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많은지라 작전에 차질이 생긴다면 아군은 전멸할 것이 너무 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맥아더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귀관들이 내 상륙 작전에 동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인이 상륙 작전을 계획한 이유는 지금까지 귀관들이 말한 이유 때문입니다. 귀관들은 모두 인천 상륙 작전이 부당하다고만 말했는데, 사실입니다. 귀관들이 인천 상륙작전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것처럼, 만일 우리 작전이 적에게 누설된다고 해도 적이 생각하기를 ‘맥아더가 바보가 아니라면 인천 상륙작전은 안 할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며, 따라서 아무 방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 이유 때문에 인천 상륙작전을 계획했습니다.”
결국,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하여 역사적인 상륙작전으로 기록된다. 위대한 사람들을 보면, 항상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낸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작전 이전에 먼저 마음이 다른 사람이 생가하지 못한 곳에 상륙을 한 것이다. 마음이 앞서가는 사람이 삶도 앞서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