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아이들을 돌봐 주세요. 아이들을...”
“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6.25사변이 터진 지 몇 년이 지났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뒤로 미뤄진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어려움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닥쳐오던 그때, 미국 오레곤 주의 한 저택에서는 나이 많은 한 남자가 신문을 들고 깊은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해리 홀터로, 그는 신문에서 한국에 관한 기사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젊은 미국 군인들이 전쟁에 투입됐으며, 그들과 한국 여자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이 한국 고아원 곳곳에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어머니의 이름조차도 몰랐다. 특히, 흑인 병사와 한국 여자들 사이에 태어나 흑인도 동양인도 아닌 반 깜둥이 아이들이 고아원에서조차 배척과 멸시를 받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즉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버려진 고아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장소를 준비하고 사람을 얻었다. 그리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모아 미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에게 버림 받고서 방황하던 아이들이 아버지를 만나 새 가정을 이룬 것처럼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아들을 미국으로 입양하는 일을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서 고아들을 받아들이는데 법적인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그는 정부기관에 “나는 미국의 법이 성경을 근거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압니다. 성경에는 고아들을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고아들을 위해 일하는데, 왜 미국 정부가 성경의 가르침을 막습니까?”하고 항의했다. 결국 임시법이 통과되어 고아들은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그 뒤 그는 자신의 남은 일생을 고아들을 위해서 바쳤다. 수천 명의 고아들을 데려다가 자기 비용으로 키워서 미국의 좋은 가정을 골라서 입양시키곤 했다. 그는 이제 ‘고아의 아버지’라는 귀한 이름을 얻고 고아원 뒤뜰에 묻혀서 잠들어 있다. 그의 이름이 고귀한 이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남이 갖지 못한 사랑과 어려움 앞에 좌절하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