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 보면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이 창조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세히 보면, 해는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달은 밤을 주관하...

by 박옥수 목사  /  on Jun 17, 2006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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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보면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이 창조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세히 보면, 해는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달은 밤을 주관하게 하셨는데, 해는 변하지 않지만 달은 늘 변한다. 보름달에서 반달이 되고 그믐달이 되고, 다시 초승달로 반달로 보름달로 변해가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밤 하늘의 달을 볼 때가 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저건 반달이다. 저건 보름달이다. 저건 초승달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반달은 사실 반달이 아니고 온달이다. 초승달도 초승달이 아니고 온달이다. 달 전면에 햇빛이 비취면 우리에게 보름달로 보이고, 지구에 가려져서 달의 반에만 햇빛이 비취면 우리 눈에는 반달로 보인다. 달에 손톱만큼 조금만 햇빛이 비췰 때, 우리는 초승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든 초승달도 반달도 실제로는 모두 둥근 달 그대로이다. 보름달에서 점점 작아져서 반달이 된다고 해서 실제까지 반쪽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햇빛이 비치는 양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 달은 여전히 둥근 달 그대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정확하고 분명하게 달을 보고 반달이라고 말해도 그건 틀린 말이다. 달은 둥근 달 그대로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달을 볼 때 “이건 반달이야. 이건 초승달이야.” 그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보는 것을 고집할 때가 있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학교 입학시험이나 회사 입사시험을 치를 때, 그 학교나 회사가 응시자의 당락을 결정하지 시험을 친 사람이 결정하는 건 아니다. 내가 회사에 들어가기로 아무리 굳게 결심해도 회사에서 불합격시킨다면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부족하다고 해도 회사 측에서 합격시켜주면 나는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
그처럼 내가 볼 때 어떠하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보기에 반달이냐, 우리 보기에 초승달이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실제의 달이 반달이냐 초생달이냐, 그것이 중요하다. 옛날 사람들은 달을 보는 기회가 많았다. 전기도 없고, 여름에 더워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있으면 자연히 하늘에 떠 있는 별이 보이고 달이 보이게 마련이었다. 그들은 달을 보면서 반달, 초생달, 아니면 보름달 그렇게 말했다. 그뿐인가. 옛날 사람들은 달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제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까지 갔다 오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 누구도 달에 계수나무가 있다거나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상식적으로, 달이 반달로 보이는 것은 실제 반달이어서가 아니라 햇빛이 반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우리 눈에 반달로 비치는 것이지 실제는 둥근달이라는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몰랐을 때 우리는 반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삶을 살아갈 때 한번쯤 자기가 보는 것을 내려놓고 실제가 어떤가 살피는 것은 현명한 삶의 지혜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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