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옷과 가죽 옷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몸이 벌거벗었음을 느끼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따서 치마를 만들어서 자기들의 몸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취한 방법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자기 허물을 임시 가리는 것이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서 허물을 온전히 가리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이 짧은 이야기는 온 인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오늘 여러분과 제 신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사람들은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아담과 하와가 했던 것처럼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가죽옷을 입고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삽니다. 이 두 옷의 차이를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인간이 만든 무화과나무 잎 치마에는 희생이 없습니다. 즉,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입니다. 죄의 삯인 사망을 치르지 않고는 우리 죄를 가릴 수 없습니다.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값인 사망이 지불되어야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침 받은 대로 죄를 지으면 매일 회개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는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또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신앙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방법으로는 아무리 쉬지 않고 치마를 만들어 입어도 어느 정도 지나면 허물어지고 또 허물어졌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가리는 것은 절대로 온전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죄인이라는 상태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가죽 옷은 전혀 다릅니다. 처음으로 죽음이 에덴에 임했습니다. 아무 죄 없는 짐승이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로 인한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짐승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이 도둑질하거나 거짓말하거나 간음하거나 살인하여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내 죄를 사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해도 마음 안에서는 여전히 죄가 살아서 여러분을 괴롭힙니다. 죄에서 참 해방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분명히 씻어주시기 위해 우리가 저지른 죄의 형벌을 처리하는 것을 우리 눈앞에서 똑똑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 없는 짐승을 그들 눈앞에서 죽이셨습니다. “이 짐승은 죽지 않아도 되는데, 너희들의 죄 때문에 죽는 거야. 이 짐승이 죽임을 당하면 그 가죽으로 너희 허물이 가려질 거야.” 아담과 하와는 죄 없는 짐승이 자신들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저 짐승은 죽지 않아도 되는데, 저렇게 피흘리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에 죽는구나!’ 하나님이 그것을 분명히 보게 하셨습니다.
만인 앞에 서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2천년 전 갈보리산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 하나님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을 밀실에서 행하시지 않고 예루살렘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행하셨습니까?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고 부르짖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 무리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산으로 올라갔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갈보리 산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셨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숙이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모습을 만민에게 보여 주습니다. 우리도 그 사실을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죽으시는 모습을 분명하게 봅니다.
‘그래,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죽지 않아도 되는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을 선택한 죄, 내가 저지른 모든 죄 때문에 예수님은 저렇게 피를 흘리고 죽는 거야! 저 죽음은 내가 거짓말한 죄, 탐욕을 품고 도둑질한 죄, 음란하고 간음한 죄, 미워하고 살인한 죄 때문이야!’ 하나님은 그것을 똑똑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네가 간음한 죄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네가 도둑질한 그 죄를, 거짓말한 그 죄를, 네가 행한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박는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죄를 못박기 위해 예수님을 그 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
한 짐승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온전히 가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생각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용서를 빌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기도하지만, 그렇게 안 됩니다. 또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는 우리 죄가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습니다. 그냥 못박히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못 박히시는 것을 만인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냥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빈 후 죄를 짓지 않고 착하게 살려고 하면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에 형벌을 내려서 죄를 처리해버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망치 소리가 ‘땅땅땅’ 하고 갈보리산을 흔들 때, 그것은 여러분의 죄가 처리되는 소리였습니다. 여러분이 저지른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온전히 처리된 것 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죽 옷을 입을 때 부끄러움을 온전히 가리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자유를 얻습니다.
‘나는 더러운 죄인이었어. 악을 행했어. 그런데 내 모든 죄의 형벌은 저 십자가에서 끝났어! 저 십자가의 죽음이 내 모든 죄를 처리했어!’ 가죽 옷이 아담과 하와의 허물을 가리기에 충분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마음에 있는 갖가지 추하고 더러운 죄를 가려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고, 죄에서 깨끗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속에 더욱 넘칠 것입니다.
[박옥수 목사의 조직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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