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2월 27일 새벽 2시, 영국 해군의 수송선 버큰헤이드호가 472명의 군인과 162명의 부녀자, 그리고 아이들을 태우고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항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으로부터 약 65킬로 떨어진 칠흑같이 어두운 해상에서 배가 암초에 부딪쳤다. 그 충격의 여파로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났고, 사고 소식을 알게 되자 곧 선내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더욱 심각한 일은 정원이 최대 60명인 구명보트가 3척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630명이 넘는 인원 중 불과 180명만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반 토막이 된 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고, 풍랑은 더욱 더 심해졌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사람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일 누구라도 먼저 구명보트에 타려고 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때 선장인 시드니 세튼 대령이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사병들은 즉시 갑판 위로 집합하라! 그리고 차렷 자세로 정렬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조금의 주저함 없이 수백 명의 사병들이 민첩하게 갑판으로 집합한 후 열을 정돈한 채 부동자세를 취했다. 곧 두 번째 명령이 떨어졌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라!” 몇몇 선출된 구조대원들이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여자들과 아이들을 3척의 구명보트에 태우는 동안 갑판 위의 사병들은 관병식을 하고 있는 것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배가 점점 침몰해 들어가면서 사병들의 몸이 서서히 물에 잠기자 지휘관인 라이트 대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군들이 지금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어 보트에 매달린다면 보트는 가라앉고 말 것이다. 군인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있다. 그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군인은 이 자리를 지켜라.”
사병들은 아무도 불평하거나 움직이지 않았고, 그들의 몸은 배와 함께 점점 가라앉았다. 구명보트에 올라탄 여인들은 조금씩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사병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버큰헤이드호는 사병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고, 판자 조각을 용케 잡은 사병들은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구명보트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구명보트에 탄 사람들은 물론, 수십 명의 사병들도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버큰헤이드호에 대한 소식은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그 전에는 배가 해상에서 조난될 경우 승선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생명부터 구하기 위해 아비규환의 소동을 일으키곤 했다. 그로 인해 더 큰 인명이 희생되곤 했다. 하지만 버큰헤이드호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여자와 아이가 먼저'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배가 조난을 당해 위급해질수록 승무원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귀에 조용하게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고 속삭이는 전통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보물섬’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인 스티븐슨이 1886년에 저작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본능을 ‘인간의 내성에 감추어진 존재’라는 의미로 하이드라고 이름 짓는데, 그 하이드가 나타날수록 지킬 박사는 불행해지고 런던 거리는 죄악으로 물들어간다. 결국, 하이드는 지킬 박사의 생명을 앗아가면서 종말을 고하는데,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하이드와 같은 본능 즉, 본성(本性)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리는 삶을 살 때 좋은 열매를 맺는 행복한 삶으로 옮겨질 수 있음을 아래와 같이 가르치고 있다.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롬 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