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기사는 반드시 실어야되지만
꾸며낸 기사는 결코 실어서는 안된다."
소망 없는 삶에 안주하지 않고
18살의 나이로 집을 뛰쳐나와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오른 한 헝가리 청년이 있었다.
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당시 남북전쟁으로 미국에서 군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에 지원했지만 전쟁은 곧 끝나버렸다.
영어에 서툰 어린 이민자였던 그는 여러 힘든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독학으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영어를 공부했다.
그러나 간신히 소개 받은 허드레 일자리마저 사기당하고 만다.
그는 사기꾼을 꼭 잡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신문에 기고했는데,
지독한 불운이 오히려 일생일대의 기회로 다가와 ‘기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신출내기 기자였지만 ‘민중을 위한 언론인’이 되기로 다짐하였고,
정치계의 비리 등을 대담하고 거침없이 폭로하여 급성장했다.
그리고 ‘세인트 루이스 디스패치’, ‘뉴욕월드’를 차례로 인수하는 신문 경영자가 되어
자신의 소신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탁월한 기자였던 그는 정부의 부패를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약자를 대변하며, 파격적인 기사를 전면에 배치했다.
결국 수년 만에 파산 직전의 신문이 미국 최대 판매부수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특히 그는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고 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임을 잊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형태의 선정주의를 피해야 한다.
시시한 범죄를 가져다가 지면에 크게 키워서는 안 된다.
신문에 대서특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는 최대한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나 기사를 꾸며내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그러나 그의 원칙이 흐려진 순간도 있었다.
스페인과의 전쟁 기간에 ‘뉴욕저널’과의 판매부수 경쟁이 과열되면서
그의 신문에 과장과 헛소문, 거짓말이 쓰여진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통한하며 후회했고, 신문의 방향을 다시 제자리로 돌이켰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더욱 권력에 물들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자 애썼고,
그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뉴욕저널’의 허스트조차 그를
“이 나라에서 강력한 민주 세력”이며 “국내외 언론계에서 탑처럼 우뚝 솟은 인물”로 칭송했다.
그는 말년에 시력 상실과 많은 질병들로 고통했지만,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언론인을 배출하는 학교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세계 최초로 언론대학원을 설립하고 유산을 기부해 퓰리처 상을 탄생시켰다.
이 상은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며 편집자, 기자, 사진기자, 만평가 등
22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해왔다.
그가 평생 지키고자 했던 저널리즘의 정신은 이 상에 깃들여서 1917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가려져 있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언론인들의
든든한 응원자로 자리하고 있다.
이 청년이 바로 진실된 언론인으로 세계에 각인된 퓰리처였다.
퓰리처는 평생 진실을 밝히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았고, 그 열매를 맛보았다.
진리의 참된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진리에 마음을 두면, 거짓에서 자유케 되고, 어두움에서 자유케 되며
죄악과 부정과 실패와 불행에서 자유케 될 수 있다.
그래서 진리와 진실 앞에 산 사람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