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겨울 에스키모 마을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늑대 사냥을 나갔다.
아버지는 날카로운 칼날에 짐승의 피를 잔뜩 묻혀서 얼리더니
그 위에 또 피를 묻히기를 몇 번 반복했다.
궁금해진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칼에 피를 묻혀서 얼리면 칼날이 뭉툭해져서
늑대를 잡기가 더 힘들어 지는 것 아닌가요?
아버지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늑대는 사나워서 그냥 잡기는 힘이 들지만
이렇게 피를 묻힌 칼을 늑대가 잘 다니는 길에 꽂아두면
늑대는 처음엔 칼에 묻은 피를 먹게 되지.
그러다 보면 혀가 얼어서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칼날에 자기 혀를 베어 결국엔 자기 피를 계속해서 먹다가 쓰러지는 거란다.”
아들은 그 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는 개구리를 조용히(?) 삶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개구리를 찬 물에 넣는다.
그러면 개구리는 그냥 물 속에서 헤엄치고 논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 물의 온도를 개구리가 감각하지 못하는 정도까지 높인다.
역시 개구리는 아무 문제 없다는듯 헤엄치며 논다.
그리고 시간 지나면 다시 물의 온도를 개구리가 감각하지 못하는 정도까지 높인다.
이런 식으로 개구리가 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물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면
나중에는 개구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아 죽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죄에 한 번 두 번 빠지다가 나중에는 죄에 대한 감각조차 상실한 사람들이 많다.
마치 늑대가 감각을 잃어 자신의 혀가 갈라져 흐르는 피인지도 모르고 계속 먹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
어떤 일에 빠진 채 감각을 잃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진리인 것이다.
감각은 얼마든지 변하고 무디어지기에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인도할 수 없지만,
진리는 언제나 우리를 참된 행복과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류 최고의 지혜서인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우리가 감각이 아닌 진리를 얻기를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