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보려고 한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어떻게 설계도를 그리는 가에 따라서 어떤 건물이 지어지는지 결정되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우리의 인생의 향방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지닌 사상, 즉 한 사람의 마음에 담긴 깊은 생각 하나가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릇된 생각 하나가 한 생명을 죽이기도 하고,
미래의 결과를 예측한 생각 하나가 세계를 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생각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제로는 얕은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
어제의 생각보다 조금 더 나아 보이는 또다른 오늘의 생각
(이것도 얕은 생각)을 따라서 각오와 결심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새해가 되면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예전의 삶 그대로를 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떻게 해야 ‘얕은 생각’의 세계에서 ‘깊은 생각’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깊은 생각을 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생각에서 사고로 넘어가는 명쾌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과 사고의 차이는 예상 외로 크기 때문에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건물을 높게 짓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깊이 파야 하고,
높이 뛰어 오르기 위해서는 바닥을 힘차게 발로 차야 하듯이,
얕은 생각에서 깊은 생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생각의 전환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1968년도 멕시코 올림픽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딕 포스베리(Dick Fosbury)이다.
당시 모든 선수들은 높이뛰기의 가로대를 앞으로 뛰어 넘었다.
그러나 포스베리는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등으로 뛰었다.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폼이라서 모두들 그를 비웃었지만, 그는 결국 우승했다.
그 이후 높이뛰기를 배로 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그의 이름을 딴 포스베리법(배면뛰기법)만 현존한다.
그렇다. 바로 포스베리가 지금까지 자신이 해오던 방법으로는
더 높이 뛸 수 없다는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그 방법을 미련없이 버렸듯이,
우리가 얕은 생각에서 깊은 생각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내 생각으로 사는 것의 한계와 완벽하지 못한 ‘나’라고 하는 세계를 발견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라고 하는 세계를 버릴 수밖에 없다.
그냥 있으라고 해도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서 빠져 나왔다고 바로 변화하는가?
다음 단계의 과정, 새로운 통로와의 만남이 더 필요하다.
미국 LA에서는 모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모기가 번식을 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고여 있는 물이 있어야 하는데,
LA는 원래 사막이었기에 웅덩이가 거의 없어서 모기가 번식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모기도 살 수 없는 LA가 어떻게 미국 서부 최대의 도시가 됐을까?
정말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콜로라도 강’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콜로라도 강물과 사막이 연결된 순간 사막은 더 이상 사막이 아니었고,
LA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아니었다.
생각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콜로라도 강과 같은 생명의 줄기 즉, ‘깊은 생각’의 원천과 만나
그 물줄기가 흘러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면
그는 더 이상 얕은 생각의 세계를 사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 세계를 넘어선 깊은 생각의 세계와 ‘정확하게 마음으로 만났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을 계기로 엄청난 새로운 물살이 그의 내면세계로 흘러 들어올 때
그는 비로소 깊은 생각 즉, 사고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
인류 최대의 유산인 성경은 사람의 사고를 넘어서는 깊은 마음의 세계가 있다.
그렇기에 성경과 연결된 마음을 가지면 깊은 인생의 세계를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