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끔 명문대학에서는 발생하는 일이니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찾아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네 번째 자살자가 발생했다고 하니,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보였고, 관련된 기사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필자는 대학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카이스트에 대해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던 사람도 아니니, 이번 사태에 대해 별 말을 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번 사태의 단편은 ‘본질에 대한 망각에서 오는 불행’이다.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다양한 종류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고, 그 때마다 극도의 우울과 좌절을 맛보며 살아간다.
사실, 본질을 더욱 본질답게 추구하기 위한 적당한 수준의 압박과 스트레스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것들은 오히려 적정 수준의 긴장과 자극을 유지시켜서 우리들의 게으름을 예방하고, 어떤 소기의 성과를 이루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그런데, 때로는 그 압박과 스트레스가 과열되면서 정작 본질을 더욱 본질답게 추구하기 위한 원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압박과 스트레스 그 자체가 본질이 되어 우리들의 온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우리들은 어느 정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바르게, 또 잘 살아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자극과 압박을 준다. 당연히, 바르게, 잘 사는 게 목적인 것이고, 그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사는 게 본질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어느새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위해 사는 것인 양 착각하게 된다. 뭘 해도 남이 어떻게 볼까 염려하고, 잘난 모습이면 남한테 한없이 우쭐하지만, 못난 모습이면 극도의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 모든 게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는데, 어느새 그 본질을 잊어버린 채, ‘남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불행한 삶을 산다.
우리의 소중한 인생에서 ‘남의 시선’은 결코 본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특히 ‘체면’이 너무나 중요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남의 시선’이 본질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또, 다른 얘기를 해보자. 필자 역시 한 명의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으로서, 당연히 이 세상 모든 월급쟁이 직장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것들을 내가 조직 내에서 이루어야 하는 성과로 인한 것이기도 하고,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수준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나의 발전과 성장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때로는 그것들이 극도의 수준이 될 때가 있다. 감정 조절이 쉽지 않을 만큼, 퇴근 후나 주말에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어서도 내 머리와 마음을 떠나지 않을 만큼 나를 사로잡고 괴롭히는 수준에 다다를 때가 있다.
특히,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너무나 미운 사람이 있을 때, 그러나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할 때는 정말 피가 부글부글 끓는다.
그 정도가 심해지고, 빈도수가 잦아지면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해진다. 온통 머릿속에는 그 사람과 지지고 볶는 생각으로 가득찬다. 내 감정은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공격심으로 요동을 친다. 그것은 불행한 것이다.
그렇게 심각하게 내 영혼이 상해가는 중,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사람과 지지고 볶으려고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직장을 다니는 본질, 내가 인생을 사는 본질은 그 사람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데, 나는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내 소중한 본질들을 잊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자신도 너무나 자주 본질을 잊는 실수를 한다. 본질을 심하게 잊어버리면 반드시 불행이 찾아온다. 그러다가 본질을 회복하고 나면 나를 그렇게 불행하게 했던 것들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행복을 찾게 된다.
이번 카이스트 사태를 바라보면서, 눈부신 젊음과 창창한 미래를 포기한 채 안타까운 선택을 한 그들 역시 이렇게 본질을 잊어버렸기에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섰던 게 아닐까 싶다.
그들이 카이스트라는 명문대학에 진학한 본질, 또 카이스트에서의 배움을 통해 그들의 인생에서 추구하려던 본질, 더 나아가서는 그들 개개인의 삶에 대한 본질, 그들은 그 본질들을 자의든 타의든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본질을 더욱 잘 추구하기 위한 장치로 존재하던 그 압박과 스트레스가 어느새 본질이 되어서 그들을 그렇게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게 아닐까?
그것이 비록 좋은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라 해도, 본질을 잊게 만들 정도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주는 제도라면, 그래서 그 제도로 인한 압박과 스트레스 자체가 본질이 될 수준이라면, 그 제도는 고쳐지거나 없어지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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