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만난 사랑하는 사람을 못 잊어 그리워한다든지 꿈 속에서 누린 부귀영화(富貴榮華)에 취하여 꿈인 줄도 모르고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꿈 속에 머문다면, 혹은 생시가 꿈보다 못하다고 생시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생시가 못내 못마땅하여 다시 꿈 속에 빠져 든다면, 무의미한 일입니다. 꿈 은 없는 것이고 꿈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리창에 갇혀 삽니다. 유리창에는 때가 끼어 있어서 세상이 보이지 않거나 보여도 흐릿하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유리창을 통해 보고 아는 흐릿한 세상은 실제로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흐릿한 세상에서 끊임없이 구하여 얻고 갈망하여 이루고 삽니다. 창 밖에 실제로 있는 세상에서 보면 유리 안에 있는 사람은 없는 세상에서 무의미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없는 세상’의 일에 매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오감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삽니다. 저마다 자기 식으로 세상을 인지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인지하는 세상은 사람마다 구구각각으로 다 다릅니다. 같은 시점에 같은 장소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즐거운 일이 있어 마음이 즐겁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환하고 밝게 보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마음이 침울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세상이 온통 어둡고 침침하게 보입니다. 밝은 세상, 어두운 세상은 두 사람의 밝고 어두운 마음이 지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그냥 있는데 사람은 있는 세상에 살지 않고 자기의 마음이 지은 세상에 삽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앞으로도 늘 그렇게 삽니다. 마음이 지은 세상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순간순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 보고, 온 몸으로 느끼고 - 오감(五感)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자기자신마저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제 꼴대로 인식합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인식하는 순간 그렇게 인식한 세상 속에서 인식된 존재가 삽니다. 이렇게 인식한 것은 실제로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오감으로 실제로 있는 세상을 사진기로 사진 찍듯 찍은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한평생을 (오감으로 찍은) 사진 속에서 사진이 삽니다.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 허상이듯 오감으로 찍은(인식한) 세상과 ‘나’는 허상입니다. 사람은 한평생 거대한 사진의 터널 속에서 사진으로 삽니다. 사진이 실상이 아닌 허상이고 생명이 없듯이 사진 속에서 사진으로 사는 것은 없는 것이고 생명이 없습니다.
꿈 속과 유리창 속의 모든 것은 무의미합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없는 것이고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의미하고 몰가치(沒價値)한 것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무의미하고 몰가치한 줄도 모릅니다. 꿈을 깨고 유리창을 깨 부수면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세상과 사진인 ‘나’를 다 버리고 참의 존재로 참 세상에 나보면 일체가 없는 허상이었음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