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세월이 흐르면서 지진과 화산으로 섬의 지형이 바뀌고 인구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섬이다 보니 많은 인구가 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섬끼리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는 일이 잦아졌고 욕심이 커져서 섬 사이에 불만이 쌓이고 종국에는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여섯 섬 사람의 관계가 날이 갈수록 소원해 졌다. 세월이 흐르면사 반목과 불신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서 종국에는 원수같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왕래 없이 지내다 보니 말도 잘 통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통역하는 사람이 없이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어느 때에 세력이 강한 섬이 이웃의 약한 섬을 합병하여 투옹모르와, 모드우모르와, 조그무두모르와, 하누아두모르와의 네 나라로 갈리고 말았다. 그 때부터 하누아 산의 능선과 계곡을 하나씩 차지하고 신관과 군사를 보내어 신전을 짓고 관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 섬에서 필요할 때 제각각 제사를 바쳤다. 투옹모르와 사람에게 하누아 산은 더 이상 한 핏줄을 확인하게 해주는 구심점이 아니었다.
투옹모르와 섬사람은 동쪽 능선과 계곡을 차지하여 낙원의 주인 하애두오지 신을 온 세상을 비추는 광명의 신으로 모셨다. 그리고 동쪽 계곡에는 아름다운 꽃이 많았기 때문에 낙원을 꽃 천국으로 믿었다. 서쪽을 차지한 모드우모르와 섬사람들은 하애누어미 신을 짐 지고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신으로 모시면서 계곡에 새들이 많았기 때문에 낙원은 틀림없이 새 천국일 것이라고 믿었다. 수많은 폭포가 있는 남쪽 계곡을 차지한 조그무두모르와 섬사람들은 살랑부리부아라무 신을 만물이 살아 숨쉬게 어루만져주는 자비의 신으로 모시면서 낙원은 폭포 천국이라 믿었다. 북쪽 계곡에 신관을 두고 있는 하누아두모르와 섬사람들은 후이도리부아라무 신을 더러운 것을 휩쓸어버리고 온 세상을 깨끗이 하는 정화의 신으로 모시면서 낙원은 북쪽계곡처럼 기암괴석과 절벽이 있는 선경이라고 믿었다. 각 섬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경험한 계곡의 특성에 따라 신의 이름을 붙이고 계곡의 모습에 따라 낙원을 그리고 있었다. 어느 섬 사람도 신과 낙원의 실상을 모르면서 그들이 경험한 삶의 관념에서 그리는 신과 낙원을 믿었다. 이렇게 낙원과 신에 관한 관념이 서로 다르고 산 꼭대기 낙원에 오르는 출발점이 동서남북으로 달랐기 때문에 자기들만 옳고 나머지 세 섬 사람은 틀렸다고 주장하며 싸웠다. 오랜 세월을 쉬지 않고 비난하고 싸웠다. 서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원수처럼 싸웠다.
이렇게 반목과 갈등 속에서 길고 긴 세월이 흐른 어느 시절에 네 명의 신관들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꾸었는데 꿈을 꾼 시점은 신관마다 틀렸지만 꿈의 근간은 비슷하였다. 꿈 속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낙원을 보여주고 낙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늘사람이 와서 사람들을 낙원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약속하고 그 때까지 서로 사이 좋게 잘 살고 있으라고 당부 하였다.
투옹모르와 섬사람 이야기(IV)
꿈 속에 나타난 사람은 신관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각각의 나라 말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다 보니 섬마다 낙원의 이름을 비롯하여 제를 올리는 방식과 제에 사용하는 용어가 달랐다. 그리고 관념이 달랐기 때문에 이야기의 내용이 다르게 표현되었다. 꿈 속의 사람은 같은 내용을 신관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관마다 다르게 들었다고 생각하였다. 분명히 그 사람이 한 말은 하나인데도 각 섬사람들은 제 각각으로 듣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였다. 신관들은 자기가 듣고 이해한 대로 각각의 섬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오랜 세월을 갈라져 지내다 보니 말과 관념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낙원의 이름과 낙원에 관한 이야기가 각각의 나라말과 관념에 맞추어 다르게 표현된 것을 모르고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각각 자기가 들은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또 낙원에 가는 길도 각각 동서남북으로 달랐기 때문에 분명히 서로 다르며 자기네 길만 옳고 다른 길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같은 섬사람이라도 꿈 속 사람의 말을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생각에 따라 구구각색으로 해석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파벌(派閥)이 생기고 자기 파만 옳고 다른 파는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파벌간에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인간세상일로 싸우는 것은 물리력(경제력, 군사력 등)으로 결말이 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관념으로 자기만 옳다고 싸우는 데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어서 세상 끝날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있던 강과 산이 없어지고 새로운 강과 산이 생겨나기를 수없이 되풀이 하는 긴 세월이 흐른 어느 때에 낙원에 가는 길을 안내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사람들에게 낙원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왜 낙원에 가야 하는지, 낙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낙원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이야기하였다. 섬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믿어왔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배척하였다. 그러나 개중에는 열린 마음으로 그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 사람을 따라 나서는 사람이 더러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안내하는 대로 산꼭대기 낙원에 이르러서 내려다 보니 동서남북의 네 갈래 길이 모두 낙원을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입 소문이 퍼지면서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 사람이 안내하는 대로만 하면 누구나 낙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산밑에서 보면 동서남북의 길이 위치도 다르고 산세가 다르고 풍광이 달라서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산꼭대기에서 보면 동서남북의 길이 모두 산꼭대기로 가는 길인 줄을 모른다. 산꼭대기에 이르기 전에는 동서남북의 길이 지향하는 방향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은 꿈 속 사람의 말을 잘못 알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말에 매여 눈과 귀가 멀어서 하늘사람이 와도 몰라보고 낙원에 가는 길을 가르쳐주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