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 계곡에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천둥번개가 온 천지를 뒤흔들고 세찬 바람과 함께 폭포처럼 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금새 물이 불어나 계곡이 온통 물 천지가 됩니다. 산사태가 나면서 산꼭대기에 있던 집채만한 바위가 계곡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바위가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산산조각이 납니다. 산산조각이 난 바위들은 세차게 흐르는 계곡 물에 휩쓸려 가기도 하고 계곡 바닥에 갈아 앉아 다른 돌 틈새에 낀 돌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 제법 큰 바위덩어리 하나가 굴러 내리다가 계곡 옆 둔덕에서 멈추었습니다.
계곡물에 떨어진 바위 조각들은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상류에서 휩쓸려 내려오는 큰 바위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비명을 내지르고 크고 작은 돌로 조각조각 깨집니다. 작은 돌들은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면서 아우성을 칩니다. 둔덕에 자리잡은 바위는 안도의 숨을 쉽니다. ‘아, 나는 참 운이 좋구나. 계곡 물에 떨어졌더라면 영락없이 나도 저렇게 부딪치고 깨져나가는 아픔을 겪어야 할 터인데. 제들은 얼마나 아플까’
큰물이 잦아들고 평온이 찾아옵니다. 큰물 났을 때처럼 부딪쳐 깨지지는 않지만 이곳 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계곡 밑바닥에 갈아 앉은 바위조각들이 물살에 깎이는 아픔에 내지르는 소리입니다. 둔덕 위 바위는 여전히 의기양양합니다. ‘참 불쌍하기도 하지. 얼마나 괴로울 까. 나는 정말 복이 많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계곡 물에 갈아 앉은 돌들의 신음 소리도 많이 잦아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흐르는 물에 깎여 나간 돌들은 둥글둥글해져서 물살에 세게 부딪치지 않습니다. 가끔 큰물이 나면 산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에 부딪치면서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둔덕 위 바위는 흐뭇해합니다. ‘나는 선택을 받은 게 틀림없어’
강산이 바뀔 만큼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계곡 물 속의 돌들은 더 이상 신음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이제는 물과 어우러져 조잘조잘 즐겁게 노래합니다. 그리고 둥글둥글 동글동글 크고 작은 돌들이 형형색색으로 햇빛에 반짝입니다. 물놀이 온 사람들이 예쁜 돌들을 집에 가져가서 장식장에 진열도 하고 받침나무에 세워놓고 볼 때마다 쓰다듬고 손님이 오면 수석(壽石) 자랑을 합니다. 좀 큰 바위는 정원에 눕혀놓고 앉아서 쉬곤 합니다. 둔덕 위 바위는 까마득히 먼 옛날 그대로 삐죽삐죽 모 투성이인 채로 남아있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어느 날 농부가 둔덕 옆에서 밭을 일구다가 ‘아니, 아무 쓸모 없는 바위가 성가시게 여기 있을까’ 하고는 지렛대로 바위를 둔덕 아래 계곡으로 굴려 내렸습니다. 바위는 이리저리 부딪쳐 깨지면서 계곡물에 풍덩 빠졌습니다. 계곡에 바위의 외로운 비명이 길게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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