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본을 떠나 6개월간 여행한다고 한다. 여행을 하고 싶을때마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렇게 혼자서 장기간 여행을 하는 여행벌레(travel bug)에 물린 젊은이이다. 일본을 떠나서 일본으로 되돌아 갈 때까지 비행기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배, 기차 버스 자전거 등등을 이용한다고 한다.
왜 혼자서 여행하느냐고 물으니 혼자가 좋고 다른사람이 자기와 함께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고 하는 대답이 언듯 너무 간단하게 들리는지 몰라도 생각을 깊이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다. 내 질문이 너무 지나쳤나? 짧지 않은 기간동안 사랑하던 여자가 어느날 말 한마디 없이 다른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받은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여행길은 아니라고 한다. 낮으막한 음성에 말 수가 적고 조용히 웃으며 나를 보호해 주려는 몸짓이 여운을 남기는 청년이다.
나는 중국의 서쪽에서 시작, 동쪽으로 횡단하는 중이고 그는 동쪽에서 시작 서쪽으로 가는 중이다. 내가 밟아 온 길이 그가 갈 길이라 여행정보를 교환하고 오래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헤어짐을 아쉬워하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바람은 여전히 세차다. 사막을 계속 달리는 트럭 안에는 한시간도 안되어 모래바람으로 밀가루같은 먼지가 주위에 뽀얗게 쌓인다. 대기가 온통 뿌옇고 눈도 깔깔하다. 우리나라의 시골풍경을 그릴때 코스모스를 빼놓을 수 없듯이 중국의 작은 마을에는 접시꽃을 빼놓을 수 없는것 같다.
오아시스에서 오랜만에 보는 접시꽃은 잘 생긴 부자집 맏며느리의 환한 얼굴같이 넉넉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어 좋다. 6시간 쯤 사막을 달려서 안서, 옥문을 지나 만리장성의 맨 서쪽 끝에 있는 쉔비장성에 도착하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 모택동이 중국인민에게 만리장성을 오르지 않고는 사내대장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 이래 중국의 젊은이들은 일년에 한 두번 만리장성을 찾는다고 한다.
장성은 중국대륙 북쪽 산해관에서 시작 북경을 거쳐 황하를 지나 쉔비장성까지 6700km에 걸쳐 뻗어있다. 멀리서 보이는 장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꾸불꾸불하게 만들어져 있어 마치 기다란 뱀이 하늘로 솟아 올라가는 것같다.
쉔비장성의 제일 높은 망루까지에는 470개의 돌계단이 있다. 꼭데기에서 내려다 보니 장성의 주위에 있는 마을은 옥토로 농사가 잘 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역시 수로개발을 성공적으로 한 지역이라고한다.
장성의 기원은 북방의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만들어진 데서 시작 되었다. 장성은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지어졌는데 제일 처음의 것은 기원전 3세기에 지어졌고 명조(1368-1644)에 중요한 것이 많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진시황(기원전221-210)은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후 장군 몽념으로 하여금 30만명을 동원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많은 목숨의 희생위에 건설된 만리장성이다. 갓 결혼한 신랑이 장성을 지으러 멀리 차출되어 나간 후 기다리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부인이 길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어찌나 슬피 우는지 결국은 장성을 무너뜨려서 두 벽의 사이에서 죽은 남편의 시체를 찾아 장사를 지내고 부인이 자살을 했다는 애절한 얘기가 전해진다.
쉔비장성의 입구에 낮에는 문지기가 있고 밤에는 문을 잠근다. 장성의 벽 아래에 좌정한 우리는 날이 어두워지자 일행중 젊은이 세명이 암벽을 타고 만리장성 위로 올라가 나머지 일행이 던져주는 슬리핑백을 받아 주고 우리도 합류,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즐거운 만리장성에서의 하루 밤을 지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소풍을 왔는데 보기 드물게 깨끗하여 놀라다. 가욕관(Jiayuguan)요새에 있는 천하제일웅관과, 문창문을 보다.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요새안은 작은 마을과 같다.
계속 사막을 달린다. 몽고에서 20킬로 쯤 떨어진 이곳은 킬란산(Quilan Shan)과 롱수이산(Longsui Shan) 사이로 고비사막의 서남부의 일부이다. 간수 협곡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북으로 몽고와 구분되는 산과 고비사막이 있고 남으로는 칭하이지역(Qinghai Province)에 있는 티베트고원이 있다. 이 간수협곡은 옥토로 폭이 삼사마일 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30마일이나 되는 곳도 있다. 옛부터 중국을 횡단할때는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사막은 여전히 계속되고 바람은 세차다. 기온이 낮아져서 몹시 춥다. 중간중간에 도로공사가 많고 새 길을 만드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울퉁불퉁한 길을 그야말로 걷는듯 천천이 가야하고 그럴때에는 트럭이 동서남북으로 한바탕씩 뒤틀림을 한다. 트럭이 달리는 길에서도 가끔 멀리 또는 가까이 만리장성의 일부가 보인다. 트럭은 만리장성과 중국을 동서로 횡단하는 기차길과 거의 평행선으로 달리고 있다.
오늘은 8시간을 달린 후 야전캠핑(Bush Camp)을 할 예정이다. 이제 사막여행은 거의 끝나는 셈이다. 사막을 지날때는 황량한 경치가 오히려 아름다워 졸음이 안오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져서 요즘말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단순한 환경의 여행길인데 스트레스라니 좀 어처구니가 없다. 얼마를 달렸을까 풍상에 선이 부드러워진 산채만한 바위들이 우뚝우뚝 멋지게 서 있는 곳에서 캠핑을 하다.
초저녁에 좌정했기 때문에 쉬는 저녁시간이 긴 이 저녁에 식사당번인 나는 일행을 위해서 구절판과 오무라이스를 만들다. 홍당무와 양파를 각지게 썰고 캔에 있는 파란콩을 넣고 밥을 볶아 도마도케찹으로 맛을 내고 계란전을 얇게하여 밥에 씌워 오무라이스를 만들고 야채 사라다로는 버섯과 여러가지 채소를 채썰고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갈라 지단을 부쳐서 채썰어 두 폭의 알루미늄 호일로 둥글게 큰 접시를 만들어 색색이 담으니 아주 훌륭한 구절판이 되다. 조그만 밀가루 전에 각종 채소를 싸 먹으니 일품요리가 된것이다. 후식으로는 수박을 내놓으니 일행으로부터 극찬을 받는 저녁상이 되다. 호들갑스러은 젊은이들이 구절판 사진을 찍다. 가끔 외식을 하다가도 식사당번이 내차례가 되면 꼭 해먹자고 하는 일행으로부터 영광 아닌 영광스러운 부탁을 받는 것이 실은 싫지 않다.
지평선 넘어로 떠오르는 장관의 해돋이를 보고 굴랑(Gulang)을 지나 천주(Tienzuh)를 거쳐 용뎅(Yongdeng)으로 온종일 달리다. 점점 경치에는 초록색이 많아지고 이윽고 간수지역의 수도인 오아시스 난주(Lanzhou)에 도착하다. 인구는 200만으로 황하가 흐르고 몇세기 동안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들의 중요한 정거장이었다고 한다. 강가에 자리한 유전빈관에 여장을 풀고 사진으로만 보던 중국 특유의 강과 산이 멋지게 어우러진 경치 그대로인 유가협곡을 구경하다. 강의 양쪽으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어 주위를 산보하다. 인도와 차도의 구별이 없고 하수도를 만드는지 땅을 다 파놓아서 온동네가 공사장같다.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식당가에 있는 만두집에 먼저 자리하고 앉으니 여러명의 일행이 함께 들어선다. 그간 일행중에 좋아하는 사이가 된 남녀의 이야기로 홀리데이 로맨스가 생길 것 같다는 흥미진진한 얘기를 하며 저녘을 먹고 다 같이 야시장에 가다. 발을 자그맣게 꽁꽁 묶은 할머니들을 보다. 그 할머니들의 공통점은 모두 검정색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6시 호텔의 마당에 나가니 직장단위 인지 동네사람들이 모인것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볼륨 높은 음악에 마추어 체조도 하고 다이이찌도 하고 배드민튼도 하고 큰 칼을 휘둘르는 율동을 한다. 호텔의 마당에 세워 둔 트럭의 부엌을 열고 팬케이크를 만들어 아침식사를 하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재영 한인동포 자유기고가 손선혜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ommasdream@hanmail.net
위의 글은 재영한인 손선혜씨가 7주 동안 파키스탄에서 중국 북경까지 실크로드 북로를 따라 트럭을 타고 직접 다녀온 탐사기를 유로저널 독자들을 위하여 기고한 내용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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