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독일문제...독일이 유로존 위기 해결사이자 방해꾼?
2차대전이 종결된 후 독일이 폐허의 잿더미에 있을 때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은 한 연설에서 “우리는 ‘독일적인 유럽(A German Europe)’ 이 아니라 ‘유럽적인 독일(a European Germany)’이 되고자 한다”라는 말을 했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 말은 유럽평화의 교란자로서 독일이 반성하고 유럽의 틀 안에서 독일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고 이해된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이탈리아의 국채금리 최고치 상승 등 유로존(단일화폐 유로를 채택한 회원국, EU 회원국 27개국 가운데 17개국이 유로를 채택)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지난 21일 브뤼셀에서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기대했던 획기적 조치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성과는 있었다. 그리스에 대한 1천90억 유로 규모의 추가 지원, 민간 분야의 그리스 지원 분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사전적 예방 기능 강화 등이 합의되었다. 합의의 상당수가 독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냉전 전의 ‘독일 문제’가 냉전 후에도 형태와 내용이 바뀌어 계속되고 있다. 유럽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독일이 이번 위기에서는 해결책을 늦추면서 통합의 저지자로 비판을 받고 있다.
냉전중의 독일 문제...이중 봉쇄(dual containment)
냉전시기의 ‘구 독일문제’는 유럽의 평화 교란자로서 독일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1차 대전의 전쟁 책임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역사학자들이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독일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2차대전의 책임에 대해서는 독일이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 독일의 제어는
우선 미국의 관여, 그리고 독일을 불구대천의 적으로 여겼던 프랑스의 손 내밀기로 해결되었다. 냉전 전개로 미국은 소련을 봉쇄할 필요에서 서유럽에 군을 주둔시켜 서유럽 국가들끼리의 ‘내전’과 독일의 잠재적인 위협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이중봉쇄, double containment). 프랑스도 1차대전 이후 실시했던 대독일 보복정책이 실패해 나치 독일이 발호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2차 대전 후에는 독일(서독)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해 독일을 제어하는 정책을 취했다(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형성과 유럽통합 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쌍두마차 역할). 독일은 유럽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국제사회에서 신뢰할만한 국가임을 인정받았고 경제통합의 진전으로 수출대국으로 역내 교역이 증가하면서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아이러니 하지만 독일은 초국가적인 통합을 지지하고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통일을 이루는데 초석을 쌓았고 통일로 국가 주권을 회복했다.
냉전 후 독일문제...통합의 견인차에서 저지자로?
그러나 냉전이후 통일된 독일은 대외적, 대내적 요인 때문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회원국들은 독일이 유로화 도입의 수혜자라고 여기지만 독일인들은 유로화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인식하고 있다. 급속한 통일에 따른 후유증으로 1990년대 계속된 경기침체, 이에 대응해 시행된 뼈아픈 장기간의 구조조정으로 독일 경제는 이제 어느 정도 활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독일인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야 했으며 이 과정이 유로화 도입 등과 겹쳐진다. 중동부 유럽의 가입으로 너무나 이질성이 커진 유럽연합에서 독일은 여전히 EU 예산의 최대 순기여국(net contributor, EU예산에 지불한 돈이 EU예산에서 지원을 받는 금액보다 압도적으로 많다)이다. 국내 토론에서 이러한 문제가 거론되고 유로화 때문에 어려워졌다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유럽통합에 대한 정책 재량권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독일이 위기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국내 정치적 제약 때문에 이러한 역할 수행이 쉽지 않다. 또 현재 독일 지도자들도 전후 세대로서 유럽통합을 좀 더 실리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독일 시민의 60%가 그리스에 추가적인 구제금융 제공을 반대하는데 이러한 반대를 무릎 쓰고 시민들을 설득하며 적극적인 위기 해결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현재 위기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구제금융 3국 가운데 특정 국가가 유로존을 탈퇴해 현재 형태의 유로존이 부분적으로 붕괴되는 것이다. 반면에 최선의 시나리오는 통합의 획기적인 진전(quantum leap)으로 재정동맹 혹은 정치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구제금융 3국에 계속해서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지원해주면서 위기가 증폭되다 보면 독일 정치인들도 시민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할 수 있다. 위기 해결이 아니라 위기만 증폭되고 계속해서 혈세만 낭비할 것인가? 아니면 중장기적으로 독일에도 도움이 되는 유로존 단일 채권(eurobond) 발행이 나을 것인가?
이번 긴급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볼프아 뮌차우는 ‘유로존, 특히 독일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미루고 임기응변식의 해결책만을 내고 있다. 시장은 날고 있는데 유로존의 대응은 기는 형태다’라고 비판했다.
유로존이 최악의 이러한 정책적 상황에 직면하기에는 아직도 더 많은 충격과 위기 증폭이 필요하다는 점이 아이러니이다. 임계점이 언제 일지 확실히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독일을 비롯해 다른 회원국 등 정치 행위자들이 위기 극복을 위한 근본적인 개혁이 무엇인지를 알지만 임기응변식(muddle-through, scrape through)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어 임계점이 의외로 빨리 다가올 수 있다.
현재의 유로존 위기는 50여 년이 넘는 통합과정에서 최대의 위기이다. 유로존 붕괴 자체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로존의 대응은 단편적 개혁(piecemeal reform)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개혁 추진으로 최악의 위기 극복이 쉽지 않다는 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이 여론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여론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로존의 안정 - 그리스 등 구제금융 3국이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경기침체를 회복하는 일, 유로존 국가 국채 금리의 이상급등 등 불안 요인 해소 등 -이 자국의 국익이라는 논리를 반복하고 가능하다면 유로존 붕괴와 안정에 따른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해야 한다. 자국만이 아니라 유로존 전체의 시각에서.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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