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나는 끊임없이 온갖 것들을 마음에 담으면서 살았습니다. 오감(五感)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으로 느낀 것들을 태어나서부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사진 찍어 마음에 담았습니다. 온갖 사연과 배경, 살면서 만난 모든 인연, 정보와 지식 등 하나도 빠짐없이 더하기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한 찍어 담은 재질들이 황인종인 ‘나’, 한국인인 ‘나’, 가문의 혈통을 잇는 ‘나’, 예의 바른 ‘나’, 착한 ‘나’, 머리 좋은 ‘나’, 모범생인 ‘나’, 점잖은 ‘나’, 근엄한 ‘나’, 일류 학교를 나와 일류 직장을 다닌 ‘나’, 한 가정의 이러저러한 가장인 ‘나’, 신의 있는 ‘나’, 신앙인인 ‘나’, 척하는 ‘나’, 남 탓하는 ‘나’, 시기 질투하는 ‘나’, 한을 가진 ‘나’, 열등감에 빠진 ‘나’, 잘난 ‘나’ … 의 재질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러한 ‘나’는 살면서 사진 찍어 담은 사진의 재질로 된 ‘가짜’입니다. 다른 환경 조건에서 살았더라면 다른 사진을 찍어 담은 다른 ‘나’가 되어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살면서 끊임없이 더하기 해 놓은 ‘가짜’인 재질이 원래 있는 ‘본바탕의 재질’인 ‘진짜’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영원불변(永遠不變)의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진짜가 비천오니(卑賤汚泥) 망상(妄想)의 가짜에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가장 크고 가장 넓고 가장 높고 가장 낮은 의식이 먼지 한 알갱이도 아닌 것에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지혜자체인 근본이 거짓에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시공(時空)을 넘어선 대휴(大休)의 자리가 허망(虛妄)한 것에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죽어있는 것에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가짜가 진짜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거짓이 참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가짜는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고 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짜는 없는 것이어서 실제로 있는 참을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참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하고 참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가 없는 ‘가짜’라는 것을 모릅니다.
가짜에는 참이 없습니다. 참이 있어야 참을 알 텐데 참이 없으니 참을 모르고 또 참을 모르니 스스로 가짜인 줄도 모릅니다. 참은 참이기에 참을 알고 참을 알기에 가짜도 압니다. 가짜를 다 없애면 참만 남아 참도 알고 가짜도 압니다. 옛날의 나는 가짜를 없애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스스로 가짜인 줄 몰랐기 때문에 가짜가 더 가짜다워 지려고 하였습니다. 더 멋있는 가짜, 더 강한 가짜가 되기 위해 찾고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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