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살고 있는 뉴몰든 동네를 거닐다가 문득 포스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Santus Circus라는 프랑스 서커스단의 순회공연 포스터였다. 마침 뉴몰든에서 가까운 레인즈 파크에서 갖는 공연이었다.
사실, 예전에도 몇 번 이 포스터를 본 적이 있었는데, 한 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다가 막상 실행에 옮기지를 못했던 터, 이번에는 꼭 가보리라 마음먹고 드디어 평일 저녁 퇴근 후 서커스 공연을 보러 갔다.
서커스단 특유의 대형 천막 텐트와 그 흥겨운 분위기, 이렇게 서커스를 보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내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그전까지 마지막으로 봤던 서커스는 몇 학년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갔던 서커스였다.
당시 꽤 유명한 해외 서커스단이 한국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그 TV 광고를 본 내가 어머니를 졸랐고, 결국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그 서커스를 보러 가주셨다.
내 기억이 정확히 맞는지 모르겠으나, 그 서커스 공연 장소가 당시 우리집에서 매우 먼 거리였던 잠실 쪽이었던 것 같고, 어머니와 함께 지하철을 몇 번 갈아 타고서 어렵사리 공연장을 찾아갔던 것 같다.
드디어 도착한 서커스장, 어린 시절 목격한 그 거대한 천막 텐트의 위용은 지금도 떠오른다. 당시 우리집이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가장 싼 티켓을 구입하여 무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좌석에서 서커스를 봐야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너무나 신기하고 신났기에 좌석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묘기들이 이어졌고, 특히 공중그네가 정말 환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인 삐에로들의 꽁트(?)도 너무나 웃겼던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삐에로들은 아무런 대사 없이도 다양한 소품들을 동원해 관객들을 웃겼고, 생크림 같은 것으로 서로의 얼굴이 범벅이 되던 삐에로들의 모습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다시 현 시점으로 돌아와서, 이번에 본 서커스는 어린 시절에 봤던 그 서커스에 비해서는 매우 작은 규모였다.
일단, 공중그네가 설치될 만큼 천막 텐트가 크지도 않았고, 묘기들도 스케일이 작은 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번 묘기가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를 쳐댔다. 그것은 단지 내가 보고 있는 묘기들을 향한 박수가 아닌, 서커스를 보는 내내 그 어린 시절 서커스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어머니께 뭐든지 어린 시절에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특히, 동심으로 접해야 하는 것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그 진가를 느낄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니까 디즈니랜드 같은 곳도 어린 시절에 가봐야 그 진가를 느끼고 그 사람의 평생에 남을 경험과 추억이 되는 것이지, 동심이 다 사라진 성인이 되어서 가보면 별 재미도 못 느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렇게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나불거렸던 나의 개똥철학이 놀랍게도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의 내 정서와 감성을 형성하고 있는 그 수 많은 것들은 모두가 다 그 어린 시절의 경험과 추억들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 어린 시절에 듣던 음악들, 어머니가 보여주셨던 영화들, 관람했던 공연들, 내가 가본 아름다운 장소들, 그것들은 그 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추억으로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커스 역시 이번에 보면서는 어린 시절의 서커스처럼 마냥 신기하고 신나기보다는, ‘자꾸 저러다가 저 사람 실수해서 다치면 어쩌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문득 문득 들었고, 또 정말 속물같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저 사람들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나, 입장권 수익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은데, 저렇게 늘 유랑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까’ 하는 별 쓸데 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커스를 관람하고 있는 어린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부모님과 함께 공연장을 찾아서 마냥 신기하고 신난 모습으로 그 어떤 관객들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서커스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월이 많이 흘러 성인이 된 어느 날,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서커스를 관람하던 그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나처럼 그 어린 시절의 동심을 그리워하며 힘겨운 세상살이에 몸을 맡긴 채 어른이 되어가겠지...
* 제가 활동하고 있는 가야금 & 기타 듀엣 KAYA가 오는 10월 2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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