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럽의 재정위기의 여파로 전 세계의 경기가 급격히 침체 중인 가운데, 또 다시 지난 2008년 세계 신용위기 당시처럼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조짐이 불안하다.
2008년 하반기부터 세계 신용위기에서 비롯된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해고, 실직을 목격한 이야기들은 당시 ‘서른 즈음에’에 썼던 몇 편의 글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들에게 직업을 찾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우리 헤드헌터들, 그러나 우리 역시 결국은 한 회사의 부속품에 불과한 월급쟁이인 까닭에, 2008년 당시 경기침체 중 많은 헤드헌터들도 실직자가 되었고, 우리 회사 역시 상당한 인원을 감원했다.
당시만 해도 초짜 헤드헌터라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던 내가 그 감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하지만, 비록 직접 그 감원 대상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어도, 하루가 멀다 하고 경영진과의 면담 후 짐을 싸는 동료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그 정신적인 충격과 스트레스는 상당한 것이었다.
개중에는 이미 제 살 길(?)을 안전하게 마련해 두어서 구차하게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기 전에 본인이 먼저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제 발로 회사를 떠나는 쿨한 동료도 있었지만, 해고 통보를 받고 서러움을 참지 못해 구석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던 여린 동료도 있었다.
그 잔혹했던 감원 열풍은 2009년 초반까지 이어졌으며, 2009년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사그라들었고, 이후 다행히도 경기도 조금씩 회복되면서 나 역시 헤드헌터로서 기반을 잡아가며 우수한 실적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던 2010년을 보내고, 올해 들어서도 여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건만, 그리스 재정위기를 중심으로 유럽의 경제가 흔들거리더니, 이번 달 들어서는 또 다시 지난 2008년의 악몽이 재현될까 우려가 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좀처럼 성과도 내지 못하고, 업무에 적응도 못하던 동료가 해고 통보를 받고 짐을 쌌다.
많은 한국분들이 내가 외국회사를 다닌 다는 점, 그리고 우리 회사의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점에 대해 부러워하신다. 물론, 외국회사라서 갖고 있는 장점도 있고, 또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어서 갖고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반면에 외국회사라서 갖고 있는 단점 역시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들 중 하나가 바로 너무 인간미가 없이, 매정하다는 것이다.
한국회사는 근무하는 중 아무래도 수직적인 조직 구성 때문에, 또 한국인 특유의 밀착된 인간관계 때문에 피곤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만큼 인간적인 정이 있고, 조직 차원에서도 직원에 대한 애착이 있다.
그런데, 외국회사는 근무하는 중에는 별다른 간섭도 없고 눈치 볼 일도 없지만, 그런 만큼 더 이상 조직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직원으로 판명될 경우, 그야말로 가차없이 매정하게 직원을 버린다. 그리고, 그 버리는 과정(?)에 있어서도 조금의 배려나 인간적인 예우도 없다.
그래도 그 동안 수고했다며 소주라도 한 잔 사주면서, 앞날의 행운을 빌어줄 수 있는 정도의 헤어짐이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런 건 없다.
이번에 쫓겨난 동료 역시 갑작스런 타이밍과 상황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서, 그야말로 너무나 초라하고 쓸쓸하게 짐을 싸서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폐만 끼친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사무실을 떠났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서는 그와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고, 나는 긴 말 없이 그저 진심을 담아 행운을 빈다는 “Good luck!” 한 마디를 그에게 건넸다.
그 순간 바라본 그의 눈가에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고통이 스쳐갔다. 그리고, 돌아선 그의 뒷모습...
2009년 초반 이후로 이렇게 동료의 해고를 목격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순간 많은 상념들이 스쳐갔다.
그랬다, 여전히 세상은 너무나 살벌하고 매정한 곳이었다. 그저 한 동안 일들이 조금 잘 풀렸다고 방심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며 회사를 떠나야 하는 당사자가 내가 될 가능성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순간 오싹해졌다.
그 동안 이렇게 무사히 직장을 잃지 않고 하루 하루 살아온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기적이었는지, 새삼 그 동안 너무 감사하지 못하며 지내왔던 시간들도 반성이 된다.
인류는 분명 과거보다 더욱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되었고, 첨단 문명이 1초가 멀다 하고 발전해가건만, 왜 우리들의 세상살이는 오히려 과거보다 힘겨워져만 가는 것일까?
어른이 되면 세상을 살기가 더욱 쉬워질 줄 알았는데, 어렸을 때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세상은 더더욱 살기가 어려워지고, 세상살이는 어린 시절의 공부와는 아무 상관없는, 학창 시절 치렀던 그 수 많은 시험들보다 더욱 어렵고 복잡한 수 많은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래 저래 사는 게 전쟁이다. 사는 게 여행이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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