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옛날 공룡이 살다간 지구에 인간이 나타났다. 연약한 인간이 살기에 지구의 자연환경은 너무 열악하였다. 젊은 지구는 아직 안정되지 못하여 걸핏하면 지진이 일어나 땅이 쩍쩍 갈라지고 땅을 뒤엎었으며 여기저기 화산이 불을 뿜으면서 시뻘건 용암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환경 외에도 인간은 맹수와 혹독한 추위에 목숨마저 위협받으며 먹거리가 모자라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았다. 어느 때는 대 홍수가 온 들판을 물에 잠기게 하다가도 몇 년째 가뭄이 계속되어 강물이 마르고 나무도 풀도 가축도 다 말라 죽기도 하였다. 온통 세상을 바싹 말리는 가뭄이 잊을 만하면 찾아오곤 하였다. 사람들은 신에게 가뭄을 견뎌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고 신은 언젠가 때가 되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빙하기나 대 홍수와 같은 엄청난 재난을 겪으면서도 인간은 살아남았다. 지구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가고 있었으며 먹고 사는 것도 점점 풍족해 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신이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느 때인가 신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둥글게 생긴 과일을 사람 몰래 내려주었다. 그 과일은 크기가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이고 꽤 묵직하였다. 짙은 초록색 바탕에 호랑이처럼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었으며 껍질은 단단하였다. 사냥을 나갔다가 들판에서 이것을 발견한 마을사람이 처음 보는 것이어서 두려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용기를 내어 추장에게 들고 갔다. 추장은 신관과 원로들에게 기별하여 마을 회관으로 오게 하고 온 마을 사람들을 다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 과일을 보여주었다. 먼저 신관이 과일을 살펴보고 입을 열었다. “그 동안 지혜로운 선조들이 신이 내려주신 온갖 먹을 거리를 찾아주어 우리는 자자손손 번성하여 왔다. 그런데 이 과일은 바나나처럼 미끈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딸기처럼 빛깔이 곱지도 않으며 아무런 향기도 없다. 딱딱한 껍질이 뱀처럼 흉측스럽기까지 하다. 신이 이러한 것을 우리에게 주었을 리가 없다. 언젠가 아득한 옛날 우리의 위대한 신을 시샘하는 악신(惡神)이 독 버섯을 내려 보내어 우리 선조를 죽이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 과일도 악신이 우리를 죽이려고 내려 보낸 것이 틀림없다. 마을 끝 저주받은 낭떠러지에 내다 버려야 한다.” 말을 마치고 신관은 과일 앞에 개를 데리고 왔다. 개는 과일 주위를 빙빙 돌면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고는 자리를 떴다. 사람에게 해로운 과일임이 입증되었다. 추장과 원로들은 만장일치로 신관의 결정을 따르기로 하고 사람들을 시켜 과일을 저주받은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버리게 하였다.
사람들은 계속 목마름에 시달렸다. 신에게 목마름을 가시게 해 달라고 계속 빌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신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은 신을 모시는 그들의 정성이 부족하거나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열심히 신에게 간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