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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와 2세간의 화합을 위한 대화

by 유로저널 posted Jun 0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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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문트] _ 빛이 찬란한 5월에 합당하고 이 날 참석한 모든 회원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물들인 한국외국인협회 공식회가 지난 5월 15일 도르트문트 Auslandsinstitut에서 열렸었다.
정용성 회장은 2년전 음악회를 계기로 이 외국인협회에 대해서 알게되었고, 32개국의 나라가 개입됐지만 한국은 아직 대표되지 않아 한국외국인협회를 창립하게 되었다고 소개하였다.
이어서 이 날 참석한 회원들의 짧은 소개가 있었는데, 한편에는 독일, 한국, 중국, 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에서 회원들이 모집되었었고, 또 다른 한편에는 한국 1세, 2세, 혼혈 2세, 남편이나 부인이 한국사람인 회원들, 직업층에서도 공무원, 의사, 변호사, 피아니스트, 성악가 등 여러분류에 회원들이  참석하여 이 자리가 매우 다양했으며, 대화를 나누기에 더욱 의미있었다고 볼 수 있다.
화목한 진행을 위해 이 날 최경배씨 카운터 테너의 솔로, 샤오양의 중국 노래와 합창단의 멋진 무대가 있었는데, 특히 카운터 테너인 최경배씨의(뒤셀도르프 음대 성악전공) 곡은 수준이 매우 높고 목소리의 음색이 아름다웠으며 전체곡의 흐름이 매우 감미로웠다.
이제부터 공식적인 순서가 시작되었는데, Joachim씨 (한국외국인협회 부회장)는 당시 1세들이 광부와 간호사들로써 독일로 파견되었을 때의 고정관념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반대로 독일에 테어난 2세들은 학교글 다니면서, 독일 친구들과 사귀면서, 매우 서부적인 세계관을 갖게되었다. 그로인해 3세들을 거쳐야할 세계관이 독일에 온 한국 가정에는 극히 직접적으로 있게 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충돌과 불화가 나타났었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한국 작가의 시를 감상한 후 흔히 1세들과 2세들의 틀린 비평을 들을 수 있기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한국에 사는 부모님들의 교육과 세계관은 독일에 있는 한국부모님들의 세계관보다 현대적이다고 지적하였다.
정용선 회장은 첫번째 주제로 1세들이 어떻게 독일에 오게 되었는지 논의하길 원했다. Hans Vietor씨는 (부인이 한국사람) 한국이란 나라를 부인때문에 독일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고, 한국방문을 갈 때마다 모든 친척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독일에 오기 싫은 마음이 굴뚝같다면서 자기를 소개했다. 그는 1세들은 당시 양국가의 계약을 통해 광부와 간호사들로써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로 파견되었다고 말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었고 또한 한국은 경제를 증가시키기 위해 신용 대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독일에 남아서 자녀들을 교육시켰을까 물음을 던져본다. 5년이라는 기간동안만 독일에 일하기 위해 왔었지만, 독일의 좋은 환경과 이상적인 교육제도를 보고 자녀들을 키우기 위한 제일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이 날 참석한 3명의 2세들에게 자신의 교육에 대해 정회장께서 질문을 던져보았다 (한국 2세 Frank Lee 변호사, 어머니께서 한국사람Frau Michel 의사,  한국 2세 김지웅 대학생). 신기한것은 세명다 거의 일체한 답변을 했다는 점이다. 어릴땐 보수적인 교육을 받아서, 다른 애들보다도 많은 과외와 학원을 다녀야했었고, 다른 아이들보다 노는 시간도 없었다. 어릴땐 그 점이 못마땅할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남보다 멋지게 키워주신거에 감사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격려와 강요의 차이는 매우 미세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히 Michel씨는 어렸을 때 한국에 대한 동일성과 독립적인 생각을 더 키워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언급하였다.
이쯤에서 Doris Witt씨는 아이들을 외국에서 키운다면 자기 조국문화에서 멀어지기때문에 힘든점과 한국에 대한 동일성 대해서 물어보았다. Frank Lee와 필자는: “물론 두 문화의 갈래에 서서 어떤 문화에 속하는지 모를 때가 많았었다. 독일 언어에 능통하고, 많은 독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았길 바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우리는 항상 노란 피부색과 찢어진 눈, 까만 머리색의 외모를 마음속에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과는 다르고, 그들처럼 똑같이 놀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분명한 한국사람이었었다고도 볼 수도 없었다. 한국을 가면, 다른 정서와 행동과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Frank는 또 매우 재미있는 예를 들었는데 그는 한국과 독일과의 시합이 있으면 독일에 있을때에는 언제나 한국을 응원하였지만 88올림픽 때 한국에 갔었을 때에는 신기하게도 독일편을 응원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계속 듣고 있던 Joachim씨는 독일에서도 나라에 대한 동일성을 찾기는 어렵다고 했다. 히틀러시대에 슬픈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어디가서 “나는 자랑스러운 독일인다.“라고 말을 꺼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한 사람으로써 자기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 원한다”는 바램을 전하였고 더불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을 기르고 발전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시했다.
계속해서 한국어머니고 독일분과 결혼한 Boehmer씨가 자신의 경험과 교육을 소개했다. Boehmer씨는 아이들을 유치원때는 아프리카에서, 초등학교때는 포르투갈에서 그리고 중,고등학교때는 독일에서 키웠었다. 때문에 Bohmer씨의 두 자녀들은 많은 문화와 언어를 접촉하였고 다른 애들에 비해 유년시적을 보내야만 했었다.
특히 포르투갈에서 한글학교에 보냈을때는 엄마를 미워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제일 좋은 친구같은 관계를 자랑하고, 다른사람들보다도 더 다양한 세계관과 융통성을 지녔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점은 모든 한국사람들에게 적합하다고 본다는 뜻을 나타냈다. 미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자기만의 주장과 세계관념을 고집하고 정의하지만 한국사람들은 틀리다고 하였다. 흔히 Boehmer씨께서 쓰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Euroasiate”였다. 모두들 처음 듣는 단어였음고 그 뜻을 해석할 때엔 놀랄고 감동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주제는 필자가 가장 인상깊었었던 주제였다. 정회장은 에쎈 한인회장 이광일씨의 경험담을 소개해달라고 하였다.
이광일씨는: “여러분께서는 우리의 교육이 보수적으로 느껴졌었겠지만 사실 우리는 더 보수적으로 키워졌었다. 우리 부모니들께서는 우리를 매로 키우셨었고, 좋은 성적이나 일을 했어도 자그마한 칭찬도 없었다. 요즘에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용돈과 상을 주지만 그 당시에는 그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37년동안 일본에게 억눌려서 살아왔었던 아픈 일제시대의 역사때문이었고, 두번째는 형제 자매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일이 한명 한명에게 그만큼의 신경을 써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렇게 키울 수 밖에 없었다. 또 우리가 자녀들에게 어쩌면 그렇게 심하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가 배우지 못한 것을 부족했던 교육을 자식들에게 전해주고 싶기때문이다”는 마음을 보여줬다.
이 날 대화는 매우 집중적이었기 때문에 휴식 시간마저도 포기하고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참석한 모든 회원들의 평가시간이 있었다. 모두들 “너무 좋은 자리였다고, 한국인을 이제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고, 1세와 2세들과의 화합을 위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 자리를 주최한 정회장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Harald씨의 조언이었다: “우리 1세들도 변해야 한다. 2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각과 주장에 귀 기울어줘야한다. 그들은 세계화된 이 세상의 미래이다. 이 세상을 짊어져갈이들이다. 그러면 우리가 좋은 조언과 경험을 전달함을 통해 도와줘야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렇다고 대화 없이 우리의 주장만을 강요할수만은  없다. 우리가 서로의 대화를 찾는다면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것인가?!”
독일 유로저널 김지웅 기자
nathaniel_kim@hotmail.com
* eknews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8-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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