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메세지
과거 대한민국의 IT 보안은 안철수의 백신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었다.
IT 생태계에 보안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했던 시절 탄생한 백신프로그램은 진화에 진화를 거쳐 V3라는 이름으로 국내 보안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백신프로그램의 이력은 어쩌면 지금 안원장의 모습과 닮았다.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무료로 배포하여 보안 생태계를 조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사용자들로부터 수익을 창출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안철수 이전과 이후로 나뉠 듯 하다. 서울시 출마선언과 사퇴선언이라는 충격적 이벤트에 이어, 얼마 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500억원대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두고 안철수식 정치가 시작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하튼 안 원장의 사회 기부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일부에서는 대선을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기부의 시점도 절묘하고, 기부의 변도 상당히 정치적인 무게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혁신과 통합,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야권통합 신당 세력이 안 원장의 참여를 요청하는 상황에서 그는 여기에 직접 답하지 않고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우회적 답변을 내놨다. 온갖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신비주의 전략’을 택한 것이다.
더구나 안 원장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 중 하나는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이라면서 자신의 기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 내렸다.
다른 말로 가치 배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정치가 망한다는 뜻이다.한국 정치가 무너져내리고 국민으로부터 불신 받는 근본 이유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 배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안 원장은 기성 정치를 뒤집는 행보로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식 정치’의 본질은 무엇일까?
첫째, 나눔의 정치이다. 안 원장은 자신이 일궈낸 안철수연구소 지분 절반을 기부하는 파격을 통해 나눔을 몸소 실천했다. 한국 정치에는 독식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면 안 원장의 행보에는 나눔과 양보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둘째, 실천과 책임의 정치다. 안 교수는 자신의 사회 기부에 대해 “강의라든지 책을 통해서 사회에 대한 책임, 사회공헌 말을 했는데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단지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기존 정치가 말만 앞세우고 실천은 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셋째, 위로의 정치다. 정치란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안 원장은 “중산층의 삶은 무너지고 젊은 세대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다”고 우리 사회를 진단하면서 이들을 위로하는 행보로 사회 기부를 택했다. 권력만을 좇는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넷째, 희망의 정치다. 지난달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한국리서치를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은 대선주자들의 공정사회 실현 능력에 대한 점수를 묻는 질문에서 안 원장에게 6.58점(10점 만점)을 줘 다른 후보를 압도했다. 도덕성 부문에서도 6.97점으로 1위였다.
이런 조사 결과는 일반 국민이 안 원장을 “공정 사회를 실현할 도덕적인 후보이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선구자라고 인식”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은 안 원장의 파격적인 행보를 접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안 교수가 제3의 신당을 선택할지, 야권통합 신당에 참여할지는 변수로 남아 있지만 당분간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안 원장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정치행위를 시작한 것이다.
비정치적인 방법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상당히 세련된 행보로 대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그가 제도권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을지 여부는 전적으로 자신이 판단할 문제다. 실제 그가 그만한 정치적 역량이 있는지 검증은 없었다.
또 제도권 정치에 들어와도 지금의 지지세가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그의 정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앞서 언급했던 안철수 신드롬의 메시지다.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을 제대로 읽어내느냐의 여부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다. 그것은 상식이 통하는 따뜻한 자본주의다.
이념의 틀에 갇혀 허우적거리면 결코 이런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다. 그걸 안철수 신드롬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정치권은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