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미국발 경제위기 극복할까?

by 유로저널 posted Oct 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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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재치기하면 유럽은 독감에 걸린다’는 말은 미국이 유럽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함을 설명해주는 말이었다. 이제 이 말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지난달 말 미국 월가의 거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도산하면서 미국내 금융위기는 이제 실물경제로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부동산과 건설시장의 침체에 이어 자동차시장 등 내수시장 전반이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위기가 유럽에도 들이닥쳤다. 베네룩스 3국의 거대합작은행 포르티스(Fortis)가 유동성 위기에 몰려 거대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영국내 모기지업체 브래드포드 & 빙글리도 파산에 이르러 국유화되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EU) 각 회원국은 이러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지난 4일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EU의 4대국(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수반들이 모여 공동대응을 논의했으나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금리동결로 일단 급한 불 꺼
이처럼 미국의 경제위기가 유럽으로 전파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EU의 주요 교역상대국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주요 교역상대국은 미국과 중국이다. EU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교역에서 해마다 적자가 급증하고 있어 고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의 내수시장이 급속히 냉각되면 EU의 미국수출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의 와중에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은 지난 2일 정례 통화정책이사회에서 금리를 4.2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ECB는 금리동결과 금리인하 두 가능성을 놓고 고민하였으나 경기침체에도 물가상승이 계속됨을 감안하여 금리를 동결하였다. 현재 미국의 금리는 2%. 아직도 미국과 단일화폐 유로화에 가입한 유로존(Eurozone)간의 금리차이가 2배 넘게 나고 있다. ECB는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유로화를 도입한 15개 나라의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즉 유로화를 사용하는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베네룩스 3개국 등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결정하지 않고 ECB가 이자율 인상이나 인하를 결정하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ECB는 지난 7월 13개월만에 기준금리를 현행 4.25%로 0.25%로 인상한 뒤 세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현재 금리는 7년내 가장 높은 수준이다.
    ECB는 앞서 지난달 경제전망과 함께 물가상승률도 예상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 유로존 15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1.8%에서 1.4%로 낮아졌다. 내년 전망치도 1.5%에서 1.2%로 하향 조정되었다. 반면 유로존의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종전 3.4%에서 3.5%로, 내년 전망치는 2.4%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금리동결에 대해 일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부동산 거품이 꺼져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의 경우 금리인하를 원했지만 ECB의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금융기관 구제와 도산 잇따라
     지난달 27일 베네룩스 3개국의 합작은행 포르티스가 3개국 정부로부터 무려 112억유로라는 거대자금을 지원받았다. 포르티스는 1990년 네덜란드의 AMEV VSB와 벨기에의 가장 큰 보험회사인 AG그룹와의 합병으로 탄생된 회사이다. 금융 분야에서는 최초의 국가간 합병으로 주목을 받았다. 주 영업권역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및 미국이었다. 이 가운데 미국내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배출)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부실화했고 이 증권에 투자했던 포르티스도 그 여파를 견뎌낼 수 없었다. 거대 은행이 3국 정부에 손을 벌려 겨우 잠정적으로 어려움을 견뎌내었다.
     지난해 모기지업체 노던록(Northern Rock)을 사실한 국유화한 영국은 이번에도 최대 모기지업체 브래드포드 & 빙글리도 부실이 심각해지자 국유화하는 수순을 밟았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히포레알이스테이트은행에 35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어마어마한 거액의 혈세가 금융기관 구제에 들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혈세낭비라는 비판도 있지만 금융기관 도산이 단지 이러한 기관의 도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련 기업과 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정부가 나서 금융기관을 연명시키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구제금융과 도산 등이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유럽식 자본주의 대 미국식 자본주의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연합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 후반기 유럽이사회(각 회원국 수반들의 모임)와 각료이사회(회원국 장관들의 모임) 순회의장국인 프랑스는 EU와 미국 등 선진국과의 긴급 모임을 제안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번 위기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맹점을 보여주었다며 경제발전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프랑스 대통령이자 EU 순회의장국 의장이기도 한 사르코지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너무나 지나치게 규제완화와 시장의 힘만 맹종한 결과 이러한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다고 분석하였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흔히 ‘카지노 자본주의’ 혹은 ‘주주자본주의’라고 불린다.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 기업은 도산하는데 최고경영자는 몇 백억의 보수를 받는 등 극과 극이 너무 분명하게 나타난다.
     반면에 프랑스는 EU 회원국 가운데 국가개입의 전통이 강한 나라이다. 사르코지의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너무 시장의 힘을 무조건적으로 믿지 말고 경제정책에 국가의 역할이 있으며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국가개입전통이나 견해가 독일이나 영국 등 다른 EU 회원국의 전통이나 입장과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에 직면해 EU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결점을 비판하며 미국에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미국의 구제금융제공 등에 대해 정부차원의 발언이나 비판이라도 있는가?
     1997년 외환위기 때 시장개방과 외국인 주식한도 규재 완화 등 미국식 기준을 들이대며 우리를 압박했던 미국이 도덕적 해이의 극치인 금융기관 구제에 나서고 있다.
      우리경제도 이러한 위기를 제대로 잘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
      안 병 억(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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