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형사’ 등의 작품들로 유명한 한국 영화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이 런던을 방문했다.
이번 이명세 감독의 런던 방문은 주영한국문화원(원장
유로저널이 이명세 감독을 만나보았다.
유로저널: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열렬한 팬으로써,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고 1때 삶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정식으로 영화 공부도 하셨고, 영화 현장에서 조감독 생활도 하셨지만, 감독님 나름대로 영화를 배우신 비결이 있으시다면?
이명세: 저는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확실히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입니다. 가령 영화를 공부하다 보면 수 많은 영화 이론들이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빛의 예술이다’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걸 단순히 영화 서적에 적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왜 영화가 종합 예술이고 왜 영화가 빛의 예술인지 스스로 자문하고 답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만 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해서 그렇게 일종의 저 자신화, 혹은 ‘체화’시켜려 했고, 같은 맥락으로 영화 역시 그렇게 탐구한 것이지요.
유로저널: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화법 중 여러 가지가 있다면, 감독님은 영상미, 이미지를 통한 화법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분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영상 화법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인지요?
이명세: 우리가 영화에 대해 흔히 갖는 오해가 있다면, 스토리와 비주얼(영상)을 별개로 여김으로써, 가령 ‘스토리는 약한데 비주얼은 강하다’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다. 제가 2005년도에 만든 작품인 ‘형사’ 이후 유독 그런 얘기들이 한국 및 해외에서도 많이 나왔는데, 마치 제가 스토리는 무시하고 비주얼만 강조하는 감독인 것처럼 저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보는 스토리는 수 많은 생각들이며, 그 생각들을 녹여서 비주얼이라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로댕의 ‘발자크상’ 작품을 보면, 그저 하나의 덩어리 흉상으로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로댕은 그 작품을 위해 엄청난 스케치를 했고, 심지어 발자크라는 사람의 옷을 입고 거리를 다녀보는 등, 그야말로 발자크가 되려고 노력한 끝에 그와 같은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발자크상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로댕이 했던 수 많은 스케치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밑바탕이지만, 그 자체가 조각은 아닙니다. 영화에서의 스토리 역시 비주얼화 되기 전의 수 많은 스케치들과 같습니다. 즉, 비주얼은 스토리와 별개의 것이 아닌, 스토리로부터 시작해서 완성된 결과물인 것이지요.
유로저널: 이명세 감독님은 감독님 영화의 장면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스케치하는 꼼꼼한 콘티로 유명하십니다. 이를 위해 특별히 미술적 감각을 연마하신 것인지요?
이명세: 그저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을 좋아했을 뿐 (웃음) 이것을 위해 따로 공부하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
유로저널: 감독님 영화들을 보면 거의 공통적으로 수증기, 창문과 같은 특정한 클로즈업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지요?
이명세: 사람들이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얘기해서 막상 보니까, 진짜 제 작품에 그런 장면들이 계속 등장했더군요. 수증기 같은 경우, 수증기가 살아 움직이니까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창문은 다른 이의 삶을 엿보는 작용도 하지만, 그 보다는 좁은 골목길들과 작은 동네, 그리고 그곳의 창문들 너머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곳일 지라도 그 곳에서 사람들이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담아내는 장치로 사용했습니다.
유로저널: 조금 개인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주인공들의 신혼방이 있는 골목길 세트, 그리고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서 주인공
이명세: 특별한 의도는 아니고, 그냥 그런 풍경들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느낌이 그냥 이유없이 참 좋습니다.
유로저널: 첫 연출작이신 ‘개그맨’의 경우, 한 동안 그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셨던
이명세: 시나리오를 쓰던 중 당시 뚱뚱하고 코믹한 캐릭터의 배우를 찾기가 어려워서
유로저널: 전작 ‘지독한 사랑’까지만 해도 주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만 만드시다가,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서 갑자기 형사 액션을 만드신 계기는?
이명세: 원래 오래 전부터 그런 액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영화라는 게 저 혼자 만드는 게 아닌 만큼, 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만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가 되니까 우리 영화계 여건이 자본이나 기술적 여건들이 이제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 싶은 시점이 되더군요. 그렇게 해서 착수한 영화입니다.
유로저널: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의 명장면인 비지스의 ‘Holiday’가 흐르는 계단 장면은 어떻게 착안하신 것인지요? 철저한 계획을 통해 빚어진 장면인지, 아니면 순간적인 창의성을 통한 것인지요?
이명세: 비지스의 ‘Holiday’는 원래 제 첫 연출작인 ‘개그맨’ 때부터 쓰려던 노래였는데,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보다는, 이 노래가 주는 느낌을 사용하고 싶었죠. 보통 액션영화나 범죄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음악들이 있는데, 저는 ‘Holiday’ 같은 평화로운 음악이 나오는 중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순간적인 창의성보다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장면들을 스케치하는 과정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수 많은 생각과 스케치들을 영상으로 옮기는 중 정말 운 좋게도 좋은 장면이 나온 것이지요.
유로저널: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의 두 주인공
이명세:
유로저널: ‘인정 사정 볼 것 없다’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반면, 이후 연출하신 ‘형사’나 ‘M’은 관객들의 반응이 다소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감독님의 영상 화법이 다소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요?
이명세: ‘M’은 다소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만,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이후 몇 년 뒤에 연출한 ‘형사’의 경우는 어려웠다기 보다는, 당시 우리 영화계에 그런 영화, 그런 표현 기법이 없었고, 또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와 같은 대중성을 기대했던 관객들이 다소 실망하면서 그런 반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요즘에 ‘형사’를 접한 관객들은 영화를 편하게 봤다고들 합니다. ‘형사’는 전형적인 무협 영화도 아니면서, 대결 장면들도 익숙치 않고, 그래서 관객들로서는 혼돈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당시 관객들은 기존의 제 작품, 혹은 당시 한창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 ‘다모’와 같은 요소들을 기대했을 법 합니다. 우리는 늘 과거에 이미 나온 어떤 것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것을 어떠한 틀로 규정하려 하는데, ‘형사’는 그렇게 쉽게 규정되기가 어려운 독특한 영화였죠.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차기작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명세: 다음 영화는 ‘미스터 K’라는 한국판 007 영화입니다. 세계의 블록버스터 첩보물들에 감히 도전장 내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웃음) 어차피 제가 헐리우드 영화처럼 막대한 물량공세를 앞세운 영화를 만들 수도 없고, 그런 것을 흉내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대신, 적은 예산으로도 저만 만들 수 있는 그런 독특한 첩보물이 될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귀한 말씀 들려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미스터 K’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올해로 5년째를 맞는 주영한국문화원의 정례프로그램인 “Korean Film Night"(한국영화의 밤) 상영회가 2012년 전 세계가 런던을 주목하는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영상문화 노출의 기회를 최대화하기 위해 매 달 한 명씩, 일 년간 총 12인의 한국 영화 감독을 초청한다.
‘2012 한국 영화의 밤, 12 감독전’ 공식 웹사이트: www.koreanfilm.co.uk/film-nights-and-events
좌석 예약 및 기타 문의: +44 (0)20 7004 2600, info@kccuk.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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